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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쫓겨나는 사람들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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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20 03:00 입력 2020.06.20 08:2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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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6월1일 20번회 서울퀴어문화축제가 서울광장 일대에서 열려 참가자들이 을지로를 향해 행진하고 있다.

지난해 6월1일 20번회 서울퀴어문화축제가 서울광장 일대에서 열려 참가자들이 을지로를 향해 행진하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교회를 떠나는 그리스도인이 부쩍 늘었다. 단지 ‘느낌적 느낌’이 아니라 데이터로 증명되고 있다. 특히 20~30대의 감소가 눈에 띈다. 왜 그럴까? 사실 그들은 교회를 ‘떠나는’ 게 아니다. ‘쫓겨나는’ 것이다. 페미니즘을 배운다는 이유로, 성소수자이거나 그들의 편에 섰다는 이유로 교회를 무너뜨리는 세력이라 취급받는데 어떻게 버틸 수 있겠나. 그렇게 낙인찍히지 않더라도 ‘성경적’이라며 일방적으로 누군가를 혐오하는 데 앞장서는 교회에서는 신앙을 지킬 자신이 없어서, 어디 가서 그리스도인이라 밝히기 부끄러워서 교회와 멀어지는 그리스도인이 허다하다.

오수경 자유기고가

오수경 자유기고가

며칠 전, 지난해 인천 퀴어문화 축제에서 성소수자에게 ‘축복식’을 한 A목사가 교단 재판에 회부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A목사가 속한 교단은 2015년 ‘마약법 위반, 도박 및 동성애를 찬성하거나 동조하는 행위를 하였을 때’ 목사를 정직, 면직, 출교한다는 내부 규칙을 만들었다. A목사는 그 규칙을 적용한 첫 사례다. 교단은 A목사가 성소수자를 축복한 걸 문제 삼아 해명하는 경위서와 다시는 이런 행위를 하지 않겠다고 서약하는 각서를 요구했다. 이런 부당한 요구에 A목사가 소신을 굽히지 않자 교단은 재판에 회부했다. 목사가 그리스도인을 축복한 게 죄가 된 것이다. 비단 이 교단만의 문제가 아니다. 몇 년 사이 다른 교단에서도 동성애를 옹호하기만 해도 징계하도록 교단 법을 만들었다.

2018년엔 몇몇 신학생이 동성애자를 지지하는 ‘무지개 퍼포먼스’를 했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징계를 당했다. 1년이 넘는 투쟁 끝에 법원이 ‘학교의 조치는 무효’라고 판결했지만 그들은 학교로 돌아가지 못했다. 아무리 싸워도 변하지 않는 학교와 교계에 절망을 느꼈기 때문이다. 신학생 중 일부는 아예 목사가 되는 길이 막혔다. 단지 성소수자를 지지했다는 이유로 공부하고 목회 활동할 기회를 빼앗긴 것이다.

기독교는 원래 이렇게 누군가를 부정하고 혐오하는 종교였을까? 일제강점기 여성 혁명가들의 일생을 다룬 소설 <세 여자>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그나마 교회에 한 번이라도 나가본 여자가 존엄이나 평등이라는 단어를 알아들었다.” 존엄과 평등, 사랑은 본디 기독교의 언어다. 기독교는 사회에서 차별받고 핍박받는 이들의 친구였다. 그런 언어와 실천을 잃어버리고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의 최전선이 된 한국 교회의 현실이 오히려 우리 사회에 차별금지법이 왜 필요한지 강력하게 증명하고 있다. 이렇게 ‘혐오할 자유’를 주기도문처럼 외우는 이들이 존재하는데 차별당하는 이들을 보호하고 권리를 보장할 법이 마땅히 필요하지 않겠나. 차별금지법은 한국 교회가 더는 신앙을 앞세워 혐오하는 죄를 짓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꼭 필요하다.

한국 교회가 아무리 부끄러워도 나는 교회와 신앙을 포기할 생각이 없다. 성경을 통해 세상과 인간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성경은 차별과 혐오를 가르치지 않는다. 그래서 기도한다. A목사가 교단의 징계를 받지 않고 성소수자의 머리 위에 손을 올려 축복 기도를 할 수 있기를. 제도 바깥에서 ‘무지개 신학교’를 만들어 배움을 이어가는 신학생들이 무지갯빛 신앙을 포기하지 않기를. 한국 교회가 존엄과 평등, 사랑의 언어를 회복하고 실천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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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e 20, 2020 at 01:00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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