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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 자본은 어떻게 당신을 속이는가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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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플랫폼자본은 어떻게 당신을 속이는가

플랫폼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
제레미아스 아담스-프라슬 지음·이영주 옮김
숨쉬는책공장 | 316쪽 | 1만6000원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

국제노동기구(ILO)는 1944년 필라델피아 총회에서 이렇게 선언했다. 노동은 그것을 제공하는 사람과 분리될 수 없기에 상품처럼 취급돼선 안 된다는 것이다.

극단적 형태의 상품화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가 바로 노동법이다. “노동자를 통제함으로써 경제적 이익을 얻는 대가로 노동법의 규제는 사용자에게 많은 보호 의무를 부과한다. 이것은 매우 중대한 절충이다. 노동자들은 사용자의 지시를 따라야 하고, 그 대신에 기본적인 수준의 안정성과 경제적 안정을 누린다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존엄성을 강조한 필라델피아 선언의 핵심 구절은 오늘날 생명력을 잃은 박제가 됐다.

영국 옥스퍼드대학 막달렌칼리지 법학 교수인 제레미아스 아담스-프라슬은 <플랫폼노동은 상품이 아니다>에서 서비스나 상품처럼 사고 팔리는 노동의 현실을 플랫폼기업의 목소리를 통해 폭로한다.

아마존 최고경영자(CEO) 제프 베이조스는 2006년 9월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열린 콘퍼런스에서 노동 중개 플랫폼인 메커니컬터크(MTurk)를 언급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서비스로서의 소프트웨어’(SaaS)라고 들어보셨죠? 자, 이건 기본적으로 ‘서비스로서의 인간’입니다.” 노동법 규제를 받지 않고 사람의 노동력을 쉽게 사용할 수 있다는 취지로 ‘서비스로서의 인간’이라는 표현을 쓴 것이다.

MTurk와 경쟁하는 플랫폼기업 크라우드플라워의 CEO 루카스 비발트도 사업 비결을 비슷하게 설명했다. “인터넷이 없었을 때라면 10분 동안 얘기를 나눠보고 일하도록 한 후 10분 만에 해고할 수 있는 사람을 찾는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었겠죠. 하지만 기술을 이용하면 그런 사람을 찾아내고 아주 적은 금액을 주고 필요 없어지면 치워버릴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플랫폼노동을 둘러싼 문제가 점차 커지고 있다. 지난 4월29일에는 ‘라이더 유니온’ 조합원들이 서울 강남역 인근에서 총회를 마친 뒤 행진을 펼쳤다(왼쪽 사진). 지난 1일에는 서울 중구 서울지방노동청 앞에서 ‘노동부의 플랫폼노동 전반에 대한 특별근로감독 촉구’ 기자회견이 열렸다(오른쪽). 이준헌 기자·연합뉴스

한국에서도 플랫폼노동을 둘러싼 문제가 점차 커지고 있다. 지난 4월29일에는 ‘라이더 유니온’ 조합원들이 서울 강남역 인근에서 총회를 마친 뒤 행진을 펼쳤다(왼쪽 사진). 지난 1일에는 서울 중구 서울지방노동청 앞에서 ‘노동부의 플랫폼노동 전반에 대한 특별근로감독 촉구’ 기자회견이 열렸다(오른쪽). 이준헌 기자·연합뉴스

저자는 ‘공유경제’를 표방하는 플랫폼기업들이 실은 ‘구닥다리’ 노동법 규제를 회피하기 위해 노동을 다르게 포장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조심스럽게 고른 단어로 이루어진 약관은 플랫폼기업들을 중개자로, 노동자를 법적 규제를 받지 않는 독립적인 기업가로 분류한다.”

플랫폼기업들은 스스로를 마치 규제를 통해 공고한 기득권을 누리는 골리앗과 싸우는 디지털 다윗처럼 묘사한다. 기업가 정신과 혁신을 좇는 스타트업 기업들이 대기업에 맞서고 있다는 프레임을 만들고,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디지털 다윗의 성장을 막는 노동법 같은 낡은 규제를 없애달라는 서사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우버와 같은 승차공유 플랫폼 운전자들은 차 유지 비용을 빼면 최저임금조차 벌기 힘들고, 콜을 거부할 경우 애플리케이션 계정이 비활성화되며 고객이 부여하는 ‘별점’에 일희일비하게 된다. 그런데도 플랫폼기업들의 프리즘을 거치면 이들은 자신의 스케줄을 자유롭게 정하는 개인 기업가들처럼 포장된다.

플랫폼기업들의 이 서사는 일정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노동자에게 독립적 프리랜서라는 이름표를 붙이면서 플랫폼기업들은 서비스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노동 과정에 깊숙이 개입하는 전통적 ‘사용자’가 아니라 소비자와 사장님들을 매칭해주는 ‘알선자’로 숨어버린다. 플랫폼노동자를 자영업자로 잘못 분류하는 ‘꼼수’를 통해 플랫폼기업들은 최저임금 보장, 사회보험료 지출 등의 부담을 지지 않으면서 ‘무임승차’를 누리게 되는 것이다.

저자는 플랫폼노동에 바탕을 둔 ‘긱(임시직) 경제’가 창출하는 사회적 가치가 공정하게 분배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간을 서비스로 취급하지 않고도 플랫폼 혁신의 혜택을 다 같이 누릴 수 있는 모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 열쇠는 바로 플랫폼노동에 노동법을 적용하는 것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플랫폼기업들의 서사는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 ‘날씨 좋은 날 소풍 다니듯, 드라이브하듯이 일한다’(쿠팡플렉스)와 같은 광고 카피가 대표적이다. 플랫폼노동의 현실을 다룬 영국 켄 로치 감독의 영화 <미안해요, 리키>에 국내 관객들이 정서적 이질감 없이 공감한 것도 이 때문이다.

플랫폼노동에 노동법을 적용하자는 제안은 현실에서도 가시적 흐름으로 나타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올해 1월부터 긱 경제 종사자를 노동법상 보호를 받지 못하는 독립 계약자로 취급하는 것을 규제하는 ‘AB5법’을 시행했다. 유럽에서도 플랫폼노동자의 노동자성을 인정하는 판례들이 잇따르고 있다. 국내에서도 최근 중앙노동위원회가 ‘타다’ 운전기사가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라는 판정을 내렸다. ‘진짜 다윗’인 플랫폼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고, 플랫폼기업의 서사가 “거짓 복음”이라며 싸우는 이유가 궁금하다면 이 책을 읽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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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e 19, 2020 at 11:49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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