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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와 선거, 민주주의의 위기와 기회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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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가운데)이 7월 12일 푸워투스크에서 재선에 성공한 뒤 지지자들 앞에서 손가락으로 ‘V’ 자를 그리고 있다. / AP연합뉴스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가운데)이 7월 12일 푸워투스크에서 재선에 성공한 뒤 지지자들 앞에서 손가락으로 ‘V’ 자를 그리고 있다. / AP연합뉴스

K팝·K드라마·K푸드에 이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시대에 등장한 K방역, 그리고 K선거까지.

전 세계가 코로나19와 반년째 사투를 벌이고 있고, 한국도 여전히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시기다. 그럼에도 한국이 지난 4월 15일 총선을 성공적으로 치렀다는 것만큼은 자부할 만하다. 2000년대 이후 총선 투표율로는 사상 최고치인 66.2%가 참여했고, 또 이후 코로나19 확산도 어느 정도 막아내면서 4·15 총선은 스웨덴에 있는 ‘국제 민주주의와 선거지원 기구(IDEA)’가 “전 세계에 중요한 성찰과 교훈을 제공했다”고 극찬받는 선거가 됐다.

다른 나라들의 사례를 보면 ‘선거를 무사히 치렀다’는 것이 얼마나 쉽지 않은지 대번에 알 수 있다. 아직까지 코로나19가 ‘우한 폐렴’으로 불리며 중국과 그 주변국 정도에서 유행하던 지난 2월 말 총선을 치른 이란에서는 선거 직후 사망자가 급증하면서 확산세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대선거구제인 이란에서는 수도 테헤란의 경우 선거구에 배정된 의원 30명의 이름을 유권자가 모두 자필로 써내는 방식으로 투표가 이뤄진다. 많은 사람이 투표소에 장시간 머무를 수밖에 없는 환경이 이후 집단감염의 원인으로 작용한 것이다.

팬데믹도 못 막은 정치 참여
3월 중순 프랑스에서는 코뮌(지방행정단위) 단체장과 지방의회 의원 등을 뽑는 지방선거 1차 투표가 치러졌다. 선거일이 임박해 불어닥친 전염병에 어찌할 바를 몰랐던 프랑스는 1차 투표는 그대로 실시했지만, 그다음 주 실시 예정이던 2차 투표를 연기하는 선에서 큰불을 껐다.

이때쯤 여러 나라의 각급 선거 일정은 자연스레 연기됐다. 봉쇄령과 이동제한령이 내려지고 이란과 프랑스의 사례가 반면교사가 된 것이다. 대규모 유세 현장이 필수적으로 동반되고, 모든 유권자가 선거일에 투표소로 우르르 몰려드는 선거 과정이 ‘밀집·밀접·밀폐를 피하라’는 감염병 예방수칙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이 장기화되고 일상화되면서 ‘이제 더 이상 미룰 수만은 없다’는 생각이 경제 활동 재개는 물론 선거에까지 미치게 됐다. 세계 곳곳에서 선거가 다시 실시됐고, 코로나19가 선거 결과에 끼친 영향도 각양각색으로 나타났다.

일본에서는 지난 7월 5일 실시된 도쿄도지사 선거에서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현 지사가 무난히 재선에 성공했다. 역대 최다인 22명의 후보가 난립했는데, 고이케 지사가 59.7%를 득표해 나머지 21명의 후보 득표를 모두 합한 것보다 많은 지지를 받았다. 위협적인 경쟁자가 없기도 했지만, 코로나19 사태 ‘덕분에’ 현직 프리미엄이 더욱 부각됐다. 거리유세는 사라졌고 ‘관심끌기’에 집착하는 온라인 유세만 횡행했다. 현직 단체장인 고이케 지사는 ‘코로나19 부실 대응’으로 지지율이 최저 수준인 아베 신조 총리와 대비되는 일일 브리핑으로 표를 차곡차곡 모았다. 연립여당인 자민당·공명당의 지지를 업었지만, 감염병 대처에서만큼은 중앙정부·여당과의 차별화 전략을 쓴 것이었다.

총선을 이틀 앞둔 지난 2월 19일 이란 수도 테헤란 거리에 후보들의 선거벽보가 게시돼 있다. / 로이터연합뉴스

총선을 이틀 앞둔 지난 2월 19일 이란 수도 테헤란 거리에 후보들의 선거벽보가 게시돼 있다. / 로이터연합뉴스

‘심판의 선거’와 ‘분열의 선거’
코로나19가 ‘정권 심판’의 기제로 작동한 선거 결과도 눈에 띈다. 지방선거 2차 투표가 3개월여 미뤄진 프랑스에서는 지난 6월 28일 결선 투표에서 집권당인 ‘레퓌블리크 앙마르슈’가 참패했다. 3대 도시인 파리·마르세유·리옹에서 모두 사회당 또는 녹색당·좌파 선거연합 후보가 시장으로 당선됐다. 투표율은 41.7%로 최저 수준을 기록했고 야권의 승리로 귀결됐으니, 한국의 4·15 총선과는 정반대 결과가 나온 것이다. 코로나19 사망자만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많은 3만 명(7월 15일 기준)인 프랑스에서 감염 위험을 감수한 채 투표소를 찾아가 여당을 찍어준 사람은 많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터키 이스탄불에서는 26년 동안 이어진 ‘에르도안 불패 신화’가 깨졌다. 이스탄불은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현 대통령이 1994년 시장으로 당선된 이후 에르도안과 그가 창당한 정의개발당(AKP) 후보가 단 한 차례도 패한 적이 없었다. 그런 곳에서 6월 24일 실시된 이스탄불 시장 ‘재선거’에서 야당인 공화인민당(CHP)의 에크렘 이마모을루 후보가 전직 총리인 비날리 이을드름 AKP 후보에게 약 9%포인트 차로 승리한 것이다. 이 선거가 ‘재선거’였던 까닭은 지난 3월 말 실시된 지방선거에서 이마모을루 후보가 0.2%포인트 차로 신승을 거두자, 터키 최고선거관리위원회(YSK)가 선거를 무효화했기 때문이다. 일부 지역의 개표감시위원 지정 절차에 문제가 있다는 이유였지만, 야권과 지지자들은 ‘노골적인 독재 행태’라며 연일 시위를 벌였다. 결과적으로 재선거 결정은 성난 민심을 부채질한 꼴이 됐다.

정권 심판과 지지가 팽팽하게 맞붙으며 극심한 분열상을 보여준 선거도 있다. 지난 7월 12일 치러진 폴란드 대선 2차 투표 결과 안제이 두다 현 대통령이 간신히 재선에 성공했다. 두다 대통령의 득표율은 51.2%였고, 낙선한 라파우 트샤스코프스키 바르샤바 시장은 48.8%였다. 우파 민족주의 성향의 집권당 법과정의당(PiS)의 지지를 업은 두다 대통령과 자유주의 성향 제1야당 시민연단(PO)의 트샤스코프스키 후보가 맞선 이번 선거 투표율은 68.1%로 4년 전보다 약 13%포인트나 높았다. 폴란드에서는 3만 명이 넘는 코로나19 감염자가 발생했지만 큰 이슈가 되지는 못했다.

두다 대통령의 재선이 확정되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트위터에 “내 친구 폴란드 대통령의 역사적인 재선을 축하한다”며 환영의 뜻을 표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폴란드 대선 1차 투표가 치러지기 불과 나흘 전인 지난 6월 24일 두다 대통령과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했다. 코로나19 사태 반년 만에 ‘면 대 면’으로 첫 정상회담을 가진 그야말로 ‘국빈’ 대접을 받았다. 독일 주둔 미군의 폴란드 이전배치설이 나오는 가운데 폴란드 대선에 힘을 실어준 것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07년 취임 후 최저 수준의 지지율과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와의 가상대결에서 갈수록 뒤처지면서 ‘재선가도’에 빨간불이 켜진 상태다. 전 세계 감염자 4명 가운데 1명이 미국일 정도로 코로나19의 피해가 극심한데도 트럼프 대통령이 과연 재선에 성공할 수 있을까. 11월 미국 대선이 코로나19 대응에 대한 심판의 선거가 될지, 분열 조장과 지지층 총결집을 통한 ‘면죄부 획득’ 선거가 될지 아직 예단하긴 이르다. 다만 폴란드 대통령의 재선을 축하한 트럼프에게 4개월 뒤 똑같은 그림을 보고 싶은 심리가 숨어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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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 18, 2020 at 05:19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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