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피티용 스프레이, 맥주 보관 상자, 쇼핑카트 그리고 각목. 한때 카를 마르크스로 불렸던 옛 동독 도시 켐니츠에서 최근 열린 전시회에 진열된 설치미술 작품의 재료들이다.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물건들이지만 독일에서 발원한 반파시스트 운동 ‘안티파’와 연관돼 있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여기에 메시지의 정치적 중립성을 두고 전시자와 행사 주최 측 간에 마찰이 불거지면서 그 의미가 더욱 주목된다.
반(反)매스미디어 문화활동가 그룹 ‘펭!콜렉티브’는 켐니츠 전시회 전날인 지난 8월 14일(현지시간) 자신들의 부분 전시회 겸 경매 프로젝트인 ‘안티파- 미신과 진실’을 취소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전시장 한구석에 세워진 벽 구조물에 새겨진 우파 정당 이름들을 주최 측이 지우라고 지시하면서 표현의 자유가 침해됐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면서 관객들로 하여금 극과 극은 통한다는 말굽이론과 이에 바탕을 둔 안티파를 네오나치에 비유하는 정당들에 대해 알아보게 하고 싶었다고 했다.
켐니츠 전시회 큐레이터인 플로리안 마츠너는 불필요한 논쟁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정당의 실명만 빼면 어떻겠냐고 제안했고, 펭!콜렉티브도 빼는 데 동의했다고 반박했다. 결국 펭!콜렉티브는 전시 취소 입장을 거두고, 예정된 일정을 소화하기로 했다.
현재로선 펭!콜렉티브와 주최 측 간에 실제로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펭!콜렉티브가 일련의 소동에도 전시를 취소하지 않은 것으로 볼 때, 이들이 안티파를 재조명하고 싶은 욕구가 매우 강하다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펭!콜렉티브의 작품 속에 비치는 안티파는 폭력도 마다하지 않는 과격주의자 대신 평화주의자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라피티용 스프레이는 네오나치의 인종차별 그라피티를 지우는 데 일생을 바쳐온 75세 안티파 활동가 이르멜라 슈람의 상징이다. 맥주 보관 상자는 지난해 극우주의 록페스티벌 <쉴트 운트 슈베르트>에 온 관객들이 축제를 즐기는 것을 막으려고, 근처 가게에 있는 맥주를 싹쓸이한 오스트리츠 마을 주민들을 연상케 한다.
펭!콜렉티브의 시각에서 안티파는 공권력과 특정 정치집단의 이익을 위해 폭도로 몰리곤 한다. 불타는 골판지가 담긴 쇼핑카트는 라이프치히 경찰이 새해 전날 안티파 시위대 강경 진압을 정당화하는 이유였다. 하지만 실제로 폐쇄회로TV(CCTV)에 찍힌 영상에는 불타는 카트를 경찰들에 밀어넣는 시위대도 없었고, 중상을 입은 경찰도 없었다. 극우정당 AfD는 지난해 1월 브레멘 지역구 소속 의원 프랑크 마그니츠가 좌파 정당에 선동된 남성들이 휘두른 각목과 발길질에 크게 다쳤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현장과 CCTV 영상 어디에서도 그런 장면은 보이지 않았고, 마그니츠는 강도를 당한 것 같다며 말을 바꿨다.
펭!콜렉티브로 인해 안티파 관련 논쟁은 다시 활발해졌다. 전시회 총괄기획자인 프레데릭 부스만은 현지 공영방송 MDR과 인터뷰에서 “도발과 관심도 토론으로 이어진다”면서 “사람들이 자신만의 관점으로, 진짜로 예술 작품을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August 22, 2020 at 10:37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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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파’에 대한 오해와 진실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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