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 끊겼다. 코로나19 때문에 걱정되니 방문하는 ‘어르신’ 집에서 당분간 나오지 말라는 통보를 받았다. 그때가 3월이었다. 방문요양보호사 이모씨(68)는 그때만 해도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면 금방 일도 예전처럼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오전과 오후 각각 방문하던 두 집 중 한 군데만 요양 서비스를 중단한 것도 그나마 다행이라 여겼다.
■노인 돌보는 일 힘에 부치는 노인들
“오전에 일 마치고 오후에 다음 집으로 넘어가려면 시간이 모자라 점심은 굶기 일쑤였는데 그래도 밥 먹을 시간은 생겼네 하는 생각도 했다”는 이씨에게 이후 석 달이 다 될 동안 새 일이 들어오지 않았다. 당연히 수입은 절반으로 줄었지만, 현재 고용노동부가 시행하는 ‘긴급고용안정지원금’을 신청할 수도 없다. 두 곳의 일 중 하나가 남아 ‘부분 휴업’에 해당한다는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요양보호사 일의 어려움은 코로나19 사태를 겪기 전부터 줄곧 체감해 왔다. “건물 청소용역 업체에서 일하다가 나이가 많다고 재계약을 안 해줘서 나오고, 아는 사람 소개로 간병인을 하다가 요양보호사가 그나마 낫다고 해서 자격증은 땄는데 어르신 모시는 게 쉽지 않아요.” 이씨 같은 요양보호사들은 돌보는 노인들을 어르신이라고 부른다. 일한 지 3년 정도 됐다. 이미 자신도 노년에 접어든 이씨가 거동이 어려운 노인들을 돌보는 일은 힘이 부칠 수밖에 없다. 손목과 허리가 아파 소염진통제를 달고 산다. 안 먹은 날은 아침에 일어날 때부터 온몸이 비명을 지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씨는 돌보는 어르신들에게서 자신의 미래를 본다. “치매 있는 분들 말고는 다들 말이 통하는 분들이거든. 그런데 늙으면 이 정도로 힘들 줄 몰랐다고 대부분 말씀하셔요. 나도 그렇게 늙는 게 두렵고….”
한국은 노인이 노인을 돌보는 나라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장기요양을 담당하는 인력의 연령이 가장 높다. OECD가 지난 6월 펴낸 ‘누가 돌보나? 노인 돌봄 노동자 모집과 유지’ 보고서를 보면 한국의 장기요양 돌봄노동자들의 평균 연령은 58.9세로 조사대상 25개국 가운데 가장 높았다. OECD 평균이 45세에 못 미쳤고 장기요양 인력의 연령이 가장 낮은 룩셈부르크 등에서는 30대를 기록한 것과 비교하면 차이가 확연하다. 간호사 등 젊은 인력이 노인 장기요양을 도맡는 서구 국가들과 비교한 탓도 있지만, 한국의 통계에도 중·노년 여성들이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요양보호사뿐 아니라 장기요양기관의 간호사들이 포함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현장에서의 차이는 더 크다.
“50대도 많지만 젊은 편, 60대는 흔하고 70대도 종종 있어요.” 시설 요양보호사로 일한 경험이 있는 정모씨(59)는 몸 쓰는 일도 많은데다 심야에도 일할 경우 쪽잠을 자야 하는 고된 환경에서 70대 요양보호사들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면 안쓰럽다고 말했다. 각자 돌보는 어르신의 집에 가야 하는 재가 요양보호사들은 서로 만나기 어렵고, 시설에선 70대 이상을 잘 채용하지 않기 때문에 흔히 보긴 어렵지만 70대 이상 재가 요양보호사만 해도 전체의 6.2%나 된다. 이러한 배경에는 중·노년층 여성이 돌봄노동 등 일부 영역 외에선 쉽게 일자리를 잡기 어려운 현실이 자리 잡고 있다. 정씨는 “70대가 넘은 분들은 예전부터 쭉 해와서 그렇게 나이를 드셨다기보다는 돈은 필요한데 써주는 곳은 없으니 늦게나마 자격증 딴 분들이 많아서 그렇다”고 말했다.
정씨가 말하는 현실은 통계에서도 다시 한 번 확인된다. 한국은 OECD 회원국 가운데 장기요양 인력의 연령이 가장 높은 반면 근속기간은 가장 짧아 2년을 겨우 넘을 정도로 오래 일하지 못하는 나라다. 일이 고되기 때문이라고 하기엔 어느 나라나 노인 돌봄노동의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고, OECD 평균이 5년으로 나온 점과도 대비된다. 게다가 제도적인 문제도 있다. 보건복지부의 ‘장기요양급여 제공기준 및 급여비용 산정방법 등에 관한 고시’를 보면 근속기간이 3~5년이면 5만원, 5~7년이면 6만원, 7년 이상이면 7만원의 근속수당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이 수당이 한 시설에서 근무할 때만 발생하기 때문에 요양보호사에 대한 인건비를 최대한 아끼려는 시설 입장에서는 3년을 채우기 전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고 나오기 일쑤다.
■근속기간은 가장 짧아 2년 겨우 넘어
2008년 장기요양보험제도가 도입되고 12년이 흘렀지만, 최대 12년의 경력을 인정받는 요양보호사가 극히 드문 것도 이 때문이다. 요양보호사의 날인 7월 1일 서울 광화문에서 실태 발표에 나선 한 요양보호사는 “내가 경력이 12년인데 임금이 그대로야. 우린 경력 인정이 안 돼서 다른 센터로 가면 처음부터 시작”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이은희 서울요양보호사협회장도 “나만 해도 10개월 정도 일하다 일이 없어져 계약 종료 뒤 다른 센터를 찾아야 했다”고 말했다.
전체의 4분의 3이 1년마다 새로 계약을 맺어야 하고, 그마저도 오랜 기간 근속하지 못한 채 떠나야 하는 요양보호사들의 노동환경은 정책적인 조치가 없으면 개선될 여지도 없다는 것이 문제다. 급속한 고령화 추세 속에서 중·노년 여성 노동시장을 지배하는 저임금 문제가 해결될 기미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2040년이 되면 현재 44만 명에 달하는 요양보호사를 포함해 장기요양 인력 수요가 1.4배 이상 급증하며 세계적으로도 유례없던 노인 돌봄시장이 만들어질 것이지만 그만큼 이 노동에 투입될 고령 인력 역시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미래에는 요양급여를 받을 정도로 몸과 마음이 힘겨워지기 직전까지 일하며 바로 몇 살 위 노인들의 요양급여를 충당하다 병상에 누워서야 겨우 돌봄을 받는 시대가 올 수 있다는 우울한 전망까지 나온다.
결국 양질의 일자리와 부족하지 않은 수입을 통해 노인들이 요양급여를 받기 전까지 황혼의 여유를 누리려면 공공 차원에서 장기요양에 들어가는 부담을 분담할 수밖에 없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수익성에 연연할 필요 없는 공공 요양기관과 달리 대다수 소규모 민간업체들은 이윤을 남기기 위해 근로조건과 서비스질을 하락시키며 경쟁하고 있다. 피해는 요양 서비스를 받는 노인과 가족에게 고스란히 돌아갈 수밖에 없다. ‘노인돌봄서비스 공공성 강화를 위한 토론회’에서 김형용 동국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돌봄을 돈을 주고 사는 기존 민간 중심의 사회 서비스 체계의 한계가 드러난 것”이라며 “단순히 시장에만 맡기지 않고 국가가 나서서 공공인프라 확보에 의지를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July 04, 2020 at 02:34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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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노인이 노인을 돌보는 나라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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