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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스완을 넘어 ‘그린스완’이 온다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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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 백조를 뜻하는 ‘그린스완(green swan)’. 이 말은 2007년 금융전문가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가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를 예언하면서 언급한 ‘블랙스완(black swan)’에서 파생됐다. 200여년 전 유럽인들에게 백조는 흰색이었다. 하지만 1697년 호주에서 검은 백조, 흑고니가 발견됐다. 경험칙을 무너뜨리는 사건이었다. 탈레브는 ‘가능성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일단 일어나면 엄청난 파급력을 지닌 것’으로 블랙스완을 묘사했다. 여기에 기후위기를 얹은 것이 그린스완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의 끝이 보이지 않는데다 기나긴 장마까지 겹치면서 ‘녹색 백조’가 나타나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환경이 아닌 바로 금융 분야에서다. 그린스완은 기후변화가 초래하는 경제·금융위기를 뜻한다.

올해 초 각국 중앙은행들의 모임인 국제결제은행(BIS)은 ‘그린스완’이라는 용어를 꺼내들었다. 기후변화에 따른 금융위기는 단순히 블랙스완으로 설명하기 부족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BIS는 1월 ‘그린스완: 기후변화 시대의 중앙은행과 금융안정성’ 보고서를 발표했고, 4개월 뒤 ‘그린스완 2- 기후변화와 코로나19: 효율성과 복원력에 대한 성찰’을 내놨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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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킬 수 없는 위기

그린스완과 블랙스완은 비슷하다. 과거에 기반을 둔 미래 예측을 통해선 예상하기 어렵고, 다양한 변수로 인해 나타나며, 동시에 여러 부문과 국가에 심각한 영향을 초래한다. 단 블랙스완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처럼 발생한 뒤에야 설명되지만 그린스완은 과학자들이 경고하듯 어느 정도 예견할 수 있다. 보고서는 “기후변화의 영향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나타날지는 불확실한데도 야심 찬 행동이 필요하다는 것은 확실하다”고 말한다.

경제학자들이 블랙스완을 분석한다면, 그린스완의 토대는 과학자들로부터 나온다. 블랙스완은 주로 실물·금융경제에 영향을 준다. 충격이 오래갈 수 있으나 수습이 가능하다. 하지만 그린스완의 충격은 되돌릴 수 없다. 경제시스템뿐 아니라 인간의 삶과 생태계에 손을 뻗치기 때문이다.

보고서는 기후변화가 수요·공급에 영향을 미쳐 통화정책 변화로 이어지고 물가안정을 저해할 수 있다고 봤다. 공급 측면에선 농산물·에너지 가격에 급격한 조정이 일어나고 변동성이 커지기 쉬워진다. 보고서는 “기후변화가 인플레이션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는 연구는 아직 적지만 자연재해와 극단적인 기후가 나타난 이후 식품 가격이 단기적으로 상승하는 경향이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고 전했다. 또한 기후변화는 경제 생산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 기후변화로 자원이 부족해지거나 혹한 또는 폭염 때문에 바깥에서 일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 생산량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사람들의 자산과 소비가 줄어 수요 측면에서도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보고서는 내다봤다.

기후변화는 금융도 불안정하게 만든다. ‘물리적 리스크’와 ‘이행 리스크’를 통해서다. 기상이변에 따른 물적 피해가 금융기관으로 파급되는 것이 물리적 리스크다. 예를 들어 미세먼지가 심해져 호흡기 질환에 걸리는 사람이 많아지면 보험금 지급 규모가 늘어난다. 손해율이 상승할 수밖에 없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미세먼지 농도가 10㎍/㎥ 증가할 때 기관지염 입원 환자는 23%, 만성폐쇄성 폐질환 외래환자는 10% 늘어난다. 폭우로 침수된 자동차가 많아지면 자동차 손해보험의 손해율이 커진다. 지난 8월 12일 오전 기준 4대 손해보험사가 집계한 침수 차량은 7036대다. 2018년 275대, 2019년 443대를 한참 웃돈다. 손해추정액도 707억원으로 지난해 24억원의 30배에 달한다. 폭염 때문에 농산물에 피해가 생기면 농·식품산업 대출·보증·융자 등 상환이 늦어진다. 이는 은행의 건전성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

이행 리스크는 저탄소경제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탄소배출산업의 가치가 급격히 떨어지면서 생긴다. 온실가스를 감축하려는 움직임으로 탄소배출권 가격이 오르면 탄소배출기업의 영업이익과 담보가치가 줄어든다. 탄소배출권은 국내에서 처음 거래된 2015년 1톤당 1만원대였으나 지난해 4만원 선까지 뛰었다. 광업·석유정제업·화학업 등 탄소배출기업에게 대출해준 은행의 건전성이 나빠질 수 있다.

루이즈 아와즈 페레이라 다 실바 BIS 부총재는 두 번째 보고서에서 “코로나19에 따른 위기 역시 그린스완으로 분류될 수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19도 생태계 변화와 관련이 있고, 경제적 피해 말고도 인간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다. 그는 팬데믹 상황에서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국제 보험체계를 구축하고, 금융기관들이 위기에 대비해 완충자본을 쌓도록 하는 규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 경제활동을 계산할 때 ‘자연자본’도 포함해야 한다고 했다. 환경에 미치는 생태학적 영향도 고려하자는 것이다. 지금은 숲에서 나무를 베면 목재 자원이 나온다고 인식할 뿐 탄소를 가두거나 공기를 정화하는 나무의 역할은 무시되고 있다. 두 번째 보고서의 핵심은 간단하다. “위기를 낭비하지 말라.”

손병두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8월 1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녹색금융추진TF 첫 회의를 주재하며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손병두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8월 1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녹색금융추진TF 첫 회의를 주재하며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10년 만에 돌아온 녹색금융

2017년 ‘기후변화 관련 재무정보공개 전담협의체(TCFD)’는 기업의 재무보고서에 기후변화와 관련한 리스크를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하는 권고안을 발표했다. 2015년 12월 설립된 전담협의체는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장들의 요청으로 금융안정위원회(FSB)가 만든 조직이다. 권고안은 전 세계 1000여개 기관을 비롯해 영국·프랑스·캐나다 등 7개 정부의 지지를 받았다. 국내 정부기관으로는 환경부·환경산업기술원이, 민간기관은 신한금융·KB금융·포스코 등 7개 기관이 지지했다. 2017년 12월에는 주요국 금융당국이 결성한 녹색금융협의체(NGFS)가 출범했다. 한국은행이 지난해 NGFS에 가입했고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도 가입을 준비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그린스완 대비에 나섰다. 금융위는 지난 8월 13일 ‘녹색금융 추진 태스크포스’ 첫 회의를 열었다. 손병두 금융위 부위원장은 그린스완을 언급하며 “기후변화 리스크가 현재화되는 시점과 영향의 정도는 다를 수 있겠지만 언젠가 반드시 일어나는 일인 만큼 선제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금융위는 기업들의 환경 관련 정보 공시를 점진적으로 확대해 금융투자에서 기후변화 리스크가 고려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국민연금을 중심으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정보를 활용한 책임 투자가 늘고 있지만 국내시장은 걸음마 단계다.

금융당국은 그린뉴딜 사업을 통해 녹색산업 투자를 활성화할 방침이다. 정책금융기관이 선도적으로 녹색투자를 확대한 뒤 민간이 참여하도록 유인체계를 짠다는 것이다. 2009년 이명박 정부도 녹색금융을 정책기조로 밀었다. 민간 금융권은 이에 부합하는 금융상품을 앞다퉈 내놨지만 ‘보조 맞추기’에 불과했다. 무엇이 녹색금융이고 녹색산업인지 불분명했다. 녹색금융은 박근혜 정부 들어 찬밥 신세가 됐다. 당국은 “무늬만 녹색경영을 표방하는 ‘그린워싱’같이 과거의 문제점이 보완될 수 있도록 녹색산업의 투자범위를 명확히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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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ust 22, 2020 at 08:45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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