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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남성의 '여성화'는 웃음거리가 되는가[플랫]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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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코로나19 때문에 대부분의 교육과정이 온라인으로 대체되었다. 올해 대학에 진학한 20학번은 OT도, MT도,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길을 둘이 걷는” 봄도 없이 여름방학을 맞이했다. 최근에는 많이 줄어드는 추세지만, 이렇게 특수한 상황이 아니었다면 어딘가에서 또 장기자랑이나 축제라는 명목으로 여장대회가 열렸을 것이다. 꼭 대학 행사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어딘가에서 꼭 한 번씩은 ‘여장’ 이벤트를 맞닥뜨린다. 그것은 대개 벌칙의 형태이며, ‘오락’을 목표로 하기에 웃기려고 든다. 신인 남자 아이돌의 첫 콘서트에는 여장하고 걸그룹 댄스를 커버하는 무대 구성이 빠지지 않는다. 남자 아이돌의 ‘여자 아이돌 춤·노래 희화화’는 K팝 신에서 툭하면 불거지는 문제다. 반면 ‘남장’은 여장만큼 흔한 이벤트가 아니다. 남장까지는 아니더라도 바지 정장처럼 남자 의상으로 여겨지는 것을 입을 때, 목적은 웃음이 아니라 ‘멋’이다.

왜 남성의 ‘여성화’만이 웃음거리가 될까?

얼마 전 걸그룹 ‘레드벨벳’의 유닛 아이린&슬기가 노래 ‘놀이’를 발매하고 챌린지가 시작되었다. ‘챌린지(Challenge)’는 공통의 주제로 자신만의 사진이나 동영상을 만들어 참여하는 것으로, 디지털 문화에서 유행의 생성과 확산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가수의 노래와 안무를 다른 사람이 커버하는 챌린지는 자연스럽게 곡의 친밀도를 높이고 대중의 참여를 유도해 이슈를 만든다.

SM 공식 계정은 이수근의 ‘놀이’ 챌린지 영상을 올리며 챌린지 참여를 독려했다(이수근은 SM 계열 SM C&C 소속이다). 챌린지 영상 속, 이수근은 아이린&슬기의 무대 의상과 헤어 스타일을 따라 하고, ‘놀이’의 커버 댄스를 춘다. 이에 대한 반응을 기사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폭소를 자아낸다” “치명적 뱃살” “치명적인 포즈 사이로 코믹스러운 몸짓을 선보이는 이수근의 모습”.

그룹 레드벨벳 유닛 아이린&슬기의 ‘놀이’ 뮤직비디오 캡처 | SM엔터테인먼트

그룹 레드벨벳 유닛 아이린&슬기의 ‘놀이’ 뮤직비디오 캡처 | SM엔터테인먼트

이런 영상을 공식 계정이 올렸다는 점에서 소속 연예인에 대한 존중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놀이’의 안무는 고난도 핸드 코레오그래피를 녹여낸 것으로, 아이린과 슬기마저 익히는 데 오래 걸렸다고 한다. 챌린지용으로 쉽게 만들었지만, 이수근은 이 안무를 틀리지 않고 해낸다. 그런데도 이 영상은 ‘웃긴’ 것이 된다. 이수근이 ‘여장’을 하고, 오로지 남자 연예인만이 드러낼 수 있는 뱃살을 훤히 드러내고, ‘여자처럼’ 춤추기 때문에. 영상의 포인트는 이제 ‘놀이’의 안무가 아니다. 이 영상은 오랫동안 우리 사회가 오락으로 소비해온 여장 남자에 대한 여성혐오적, 트랜스혐오적 코드를 건드린다.

젠더는 여성과 남성의 관계가 사회적으로 조직되는 방식이다. 흔히 생물학적 차이가 남성·여성의 성(sex)을 결정한다고 믿지만, 몸을 규율하며 성에 따라 다르게 의미를 부여하는 사회문화적 구조가 존재한다. 젠더는 “신체의 문화적 기호화”이자 수행하고 연행하는 것이다. 또한, 다른 역사적 맥락 속에서 늘 가변적이고 모순적으로 성립한다. 남성성과 여성성의 정의는 사회의 물질 기반, 언어, 문화, 역사 등에 따라 계속해서 바뀐다. 여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는 말처럼, 태어나서 몸을 싸는 포대기의 색깔부터 개인의 젠더 수행에 영향을 미친다. 그렇게 자라서, 상대의 성별을 판단할 때는 사회문화적으로 주입된 기준을 따른다.

지난달 30일 SM엔터테인먼트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그룹 레드벨벳 유닛 아이린&슬기의 ‘놀이’ 댄스 챌린지에 참여한 개그맨 이수근의 영상을 공유했다. SNS캡처

지난달 30일 SM엔터테인먼트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그룹 레드벨벳 유닛 아이린&슬기의 ‘놀이’ 댄스 챌린지에 참여한 개그맨 이수근의 영상을 공유했다. SNS캡처

이러한 여성성과 남성성 연출에는 의상과 메이크업, 말투와 태도 같은 요소들이 개입하며 각기 다르게 작동한다. 여성성은 신데렐라의 구두 같다. 여성이 아니라고 판단되는 대상이 여성성을 연기할 때, 세상은 그것을 적극적으로 조롱하고 멸시한다. 심지어 법적 여성일지라도, ‘보기에’ 충분히 여자 같지 않으면 이러한 비난을 피할 수 없다. 반면 남성성은 아이언맨의 슈트 같다. 일단 입으면, 평균 이상의 평가와 대우가 뒤따른다. 천명관의 <고래>에는 남성 의복을 입으면서부터 카리스마 있게 행동하며 사업 관계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여성 인물이 나온다.

여성성이 열등하고, 남성성이 우월해서가 아니다. 무엇이 우월하고 열등한지 나누고 배치하는 권력 때문이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성은 남성성의 대립항으로서 존재한다. 남성성은 그 자체로 주체의 특권이자 권력의 경로이기 때문에 남성성의 훼손 혹은 결핍은 병리적이거나 열등함을 의미한다. 여성성 혹은 여성화는 ‘남성성의 결핍’으로 여겨진다. 남성을 여성화된 명칭으로 부를 때 최고의 효과를 거두는 욕설의 성별화된 용례처럼, 그것은 남성 주체에게 가능한 최대의 몰락이다. 그러다 보니 수행된 여성성을 연기하는 남성은 보통 양자택일의 갈림길에 선다. 비(非)남성이 되거나, 비(非)여성이 되거나. 잘하면, 남성이 아니다. ‘게이 같다’라거나, ‘끼를 부린다’는 말이 남성 아닌 주체를 공격한다. 그렇기에 그들은 여성성을 연기하면서도 여성이 아니기를 택한다. 걸그룹의 춤과 노래를 과장하거나 이상하게 따라 함으로써 자신은 ‘이런’ 것이 안 어울리는 ‘남자’라는 알리바이를 확보하는 것이다. 슬랩스틱처럼 보이니까 웃긴다고 생각하고, 웃는 사람이 있다. 마르지 않는 샘물인, ‘여돌 희화화’ 떡밥이다.

이수근 영상의 경우 여자 아이돌은 결코 드러낼 수 없는 뱃살이 선명한 남성성의 기표로 기능한다. 아이린과 슬기의 무대가 완벽할수록, 이수근이 안무를 잘할수록, 영상은 원본과의 괴리로 더욱 웃긴 것이 된다. 당연하게도 안무는 웃기지 않고, 아이린과 슬기는 웃기려고 퍼포먼스를 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뱃살이 있으면 커버도 못하는가? 핵심은 그게 아니다. 여성성 희화화에 초점을 맞추었지만, 다른 측면도 이야기해보자. 못해도 연행자가 재미를 느끼고, 보는 사람이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틱톡에는 다양한 체형의 사람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즐기는 챌린지 영상이 넘쳐난다.

중요한 것은 의도와 맥락이며, 재미와 희화화는 다르다. 그 영상에서 선명한 것은 아이린&슬기나 ‘놀이’에 대한 관심보다, 이렇게도 웃길 수 있는 자신에게 도취한 자의식이다. 이러한 욕심은 아이린과 슬기가 공들여 빚은 퍼포먼스의 아우라를 가격한다.

춤과 노래, 연기와 같은 퍼포먼스는 몰입이 가장 중요하다. 어떤 퍼포먼스는 그 순간에만 고조되는 특별한 공기와 분위기 속으로 연행자와 관람자를 데려간다. 현실과 유리되기도 하고, 과장되기도 하고, 극적으로 요동치기도 한다. 그것을 전체적인 맥락에서 떼어놓으면 독특해 보일 수밖에 없다. 드라마 속 세계관과 쌓아올린 감정선에 녹아든 김희애의 연기를, 예능 세트장에서 흉내 냈을 때 우스꽝스럽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웃음의 소재로 가져다 쓰는 것이 옳을까? 그러한 영역에 이른 연행자의 재능과 노력, 관람자가 느낀 매혹, 연행자와 관람자가 공유한 감각을 짓밟으면서?

몰입은 만들기 어렵고 섬세하기에 한 번 깨지면 복구하기 어렵다. 꼭 여성성 희화화가 아니더라도 사례는 많다. 효린이 퍼포먼스에 열중하다가 순간적으로 찍힌 사진을 방송이 반복적으로 끌어올리고 퍼뜨린 것, 김영철이 김희애의 연기를 코미디 소재로 삼은 것, 전현무가 샤이니의 ‘루시퍼’로 예능에서 톡톡히 재미를 본 것 등…,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더라도, 야비한 행동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대부분의 여성이 남자를 연기하거나 남자 아이돌의 춤을 출 때는 이러한 문제가 일어나지 않는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남성성이 존재 그 자체로 권력이자 기본값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만큼 다른 성별의 수행을 다양한 스펙트럼의 체험으로 인식하고 진지하게 임하는 태도의 차이도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꾸준히 대학 내 여장 이벤트와 ‘여돌 희화화’에 대한 문제제기가 이어지면서 조금씩 상황이 바뀌고 있다. 중학교 수련회에서 열린 여장대회를 보고 박장대소하던 나도 이제 무엇이 문제인지 안다. 낙관은 아니지만, 이 변화의 자장 속에서 성별 규범을 넘어서는 더욱 다양한 시도와 가능성이 열릴 것이다.

*참고자료 <젠더연구 : 성 평등을 위한 비판적 학문>(크리스티나 폰 브라운·잉에 슈테판 저, 탁선미 외 역, 나남)


이진송 계간홀로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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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ust 12, 2020 at 11:57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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