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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장판과 푸코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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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05 03:00 입력 2020.09.05 03:0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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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중순, 국회에서는 의원 연구모임인 ‘약자의 눈’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이 주관한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공공일자리 전국 확대 방안’ 토론회가 열렸다. 토론회의 성격상 여러 정부 부처와 지자체 관계자들이 토론자로 초청되었는데, 다른 이들과 달리 한국장애인고용공단 고용개발원 연구원은 유독 회의적이고 비판적인 입장을 내놓았다. 비판의 요지는 “이 사업의 효과성과 노동의 성과를 계측할 합리적 기준이 없다”는 것.

김도현 <장애학의 도전> 저자

김도현 <장애학의 도전> 저자

이날 토론회를 온라인으로 시청하면서, 나는 얼마 전 출간된 노들장애학궁리소 박정수의 신간 <‘장판’에서 푸코 읽기>를 떠올렸다. 푸코는 스스로를 철학자가 아니라 고고학자이자 지질학자라고 말했지만 철학적으로 중요한 개념을 여럿 만들어 냈다. 그중 하나가 특정한 시대를 지배하는 선험적이고 무의식적인 인식틀을 의미하는 ‘에피스테메’다. 그는 근대 인간학을 지배하는 에피스테메가 언어, 생명, 그리고 바로 노동에 대한 실증과학적 지식이 응집되면서 출현했다고 말한다. 장애인공단 연구원은 장애와 노동에 대한 앎을 그날 토론자들 중 가장 많이 축적하고 있는 소위 전문가였다. 그리고 그 앎은 푸코의 지질학적 개념틀을 응용하자면 ‘자본세’(資本世)의 에피스테메에 입각해 있는 것이었다.

반면 자본세의 에피스테메에서 ‘일할 수 없는 몸’(the disable-bodied)에 불과한 이들이 노동을 권리로 주장할 때, 이는 필연적으로 그 에피스테메에 기반한 노동 개념을 전복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즉 지금의 중증장애인 노동권 투쟁은 거리에서 몸으로 수행하는 물리적 투쟁이기도 하지만, 치열한 인식론적 투쟁이기도 하다. 이들은 사회에서 구조적으로 배제돼 있었기에, 즉 공통된 삶의 경험과 지반을 갖지 않기에, 기존의 통념과는 다른 전복적 인식틀을 형성할 잠재력을 갖는다. ‘장판’(장애인운동판) 활동가는 말한다. “합리적 기준이라는 것은 이제까지 비장애인 중심, 시장 내에 있었던 사람들의 시각에서 나온 것이지 우리의 기준이 아니다.”

토론회를 보고 나서 책을 다시 펼쳐들었다. 미셸 푸코. 한국 사회에서 인문학 분야를 중심으로 독서를 해온 이들 중 그를 모르는 이가 있을까? 아마도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그의 텍스트 전반을 꾸준히 읽어 왔고, 그래서 푸코에 대해 어느 정도 안다고 느끼는 활동가들은 또 얼마나 될까? 이에 해당하는 이도 많지 않을 것 같다. 이런 현실에서 <‘장판’에서 푸코 읽기>의 발간은 여러모로 반갑고 의미 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푸코는 자신의 저작이 “생산자의 소유를 벗어나 누구나 필요에 따라 언제든지 들고 다니면서 쓸 수 있는 연장통”이 되길 바랐지만, 그 자신이 만든 연장통의 연장들은 누구나 사용하기에는 난도가 높은 것도 사실이다.

나는 이 책을 여러 번 읽었지만, 앞으로도 내 책상 가까운 곳에 두고 들춰보며 수시로 써먹게 될 것 같다. 원래 연장통이라는 건 그렇게 쓰이는 법이므로. 나뿐만 아니라 소수자운동을 하는 다른 활동가들에게도 이 새로운 연장통이 요긴하게 활용될 수 있기를, 더 많은 이들이 “마치 심해에서만 신비로운 빛을 발하는 해파리처럼, 운동하는 삶 속에서만 특유의 광기 어린 신비를 발하는 푸코의 담론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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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05, 2020 at 01:00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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