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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의 신’ 김광현을 돕는다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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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메이저리그 (MLB)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김광현. AP연합뉴스

미국 메이저리그 (MLB)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김광현. AP연합뉴스

야구의 ‘신’이 있을까. 열심히 하면 복을 내려주고, 나쁜 짓을 하면 벌을 주는.

좋은 일이 계속되면 언젠가 나쁜 일이 찾아올 것이라는 ‘새옹지마’ 이론은 오래전부터 야구에서 확인된 사실이다. 어떤 타자가 한동안 잘 치는, 이른바 뜨거운 손(Hot hand)을 갖고 있다면 머지않아 한동안 잘 못 치는 순간이 찾아온다는 것은 진리에 가깝다. 굳이 야구통계 이론을 갖다 붙이지 않아도 수학적으로 증명된다. 야구는 확률의 경기이고, 확률은 ‘큰 수의 법칙’에 따라 평균에 수렴하게 마련이다. 3할 타자라면 지금 아무리 못 쳐도 경기를 치르면 치를수록 타율이 3할에 가까워진다.

그런데 정상 범위를 넘어선 불운의 순간이 찾아올 때가 있다. 타자의 고민이 깊어진다. 내가 지금 슬럼프가 길어지는 것은 혹시 무슨 잘못을 해서 야구의 신으로부터 버림받았기 때문이 아닐까.

야구는 ‘운’이 생각보다 큰 영향을 미치는 종목이다. 모든 성공과 실패가 다 운에 달렸다는 얘기가 아니라 어떤 선수의, 팀의 기복이 심한 것은 실력과 노력의 문제가 아니라 ‘운’의 문제일 때가 더 많다는 뜻이다.

시카고의 한 로펌에서 일하던, 야구를 좋아하는 보로스 맥크라켄은 2001년 베이스볼프로스펙터스를 통해 ‘DIPS’라는 이론을 발표했다. ‘수비 무관 투수 기록’이라고 할 수 있는 DIPS를 거칠게 요약하면 일단 타자의 방망이에 맞은 공은 어디로 갈지 알 수 없다는 데서 출발한다. 방망이에 맞은 공이 안타가 될지, 수비 정면으로 가 아웃이 될지는 ‘운’(또는 ‘신’)의 영역이라는 것이다.

미국 진출 후 첫 등판까지 우여곡절

맥크라켄은 투수의 연도별 성적이 운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증명했다. 어느 해 운이 좋아 평균자책이 좋았다면, 이듬해에는 DIPS에 걸맞은 수준으로 이동했다. 수비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결과(홈런, 삼진, 4사구)를 갖고 계산한 결과(DIPS)가 실제 평균자책과의 ‘상관관계’가 뚜렷했다. 이는 타자도 마찬가지여서 페어지역에 떨어진 타구의 확률, 그러니까 수비가 처리할 수 있는 범위의 타구 타율은 운의 영역에 가깝다. 타자들의 인플레이 타구 타율(BABIP)은 어느 해 잠시 높았더라도 이내 커리어 수준으로 회복되는 경우가 많다. 좋은 투수는 가능한 공을 방망이에 안 맞히는 투수이고, 좋은 타자는 강하게 많이 맞히는 타자다. 맞은 뒤는 운의 영역이지만, 그 공을 맞히는 것까지는 실력의 영역이다.

‘운’의 역할이 증명되면서 야구는 바뀌기 시작했다. 일단 강하게 때리는 데 성공했다면 그게 야수 정면으로 가 잡히는 것은 내 잘못이 아니라는 것이다. 운에 지배되지 않으려면 투수는 삼진을 잡고, 타자는 타구를 아예 담장 밖으로 넘기는 것이 목표여야 한다.

김광현(33·세인트루이스)은 지독하게 운이 없었다. 지난 시즌이 끝나고 원소속구단인 SK를 간신히 설득해 메이저리그 진출을 허락받았다. 이 과정에서 잡음도 많았고, 마음고생도 적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꿈에 그리던 메이저리그 유니폼을 입는 데 성공했다. 세인트루이스와 2년 800만달러에 계약했다. 김광현은 입단 기자회견에서 ‘고마워요 SK’, ‘반가워요 세인트루이스’라고 적힌 두 개의 손팻말을 흔들어 보였다.

스프링캠프 때까지는 모든 일이 잘 풀리는 듯했다. 스프링캠프 시범경기 때 무실점 등판이 이어지며 ‘미스터 제로’라는 별명을 얻었다. 선발진 합류가 가능해 보이는 순간 코로나19 팬데믹이 모든 것을 흔들어놓았다. 캠프가 중단됐고, 시즌이 언제 열릴 지 알 수 없게 됐다. 훈련할 곳도 마땅치 않은 가운데 한국 귀국도 자가격리 기간 때문에 불가능해졌다. 한국의 가족과 떨어진 채 낯선 플로리다에서 마냥 기다리는 시간이 이어졌다.

어렵게 시즌 재개가 결정되자 이번에는 보직 문제가 벌어졌다. 선발진이 꽉 찼고, 김광현에게는 ‘마무리’라는 낯선 임무가 주어졌다. 김광현은 한국에서 뛴 13년 동안 한 번도 주전 마무리로 뛴 적이 없었다. 구단은 신뢰한다고 했지만, 김광현에게는 시련에 가까운 일이었다. 7월 25일 개막전, 김광현은 고생 끝에 마무리로 나서 세이브를 따냈다.

불운 딛고 더 많은 행운이 오기를

잘 풀리는 듯하더니 또 시련이 찾아왔다. 이번에는 구단 내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했다. 확진자 중에는 포수 야디에르 몰리나도 포함됐다. 거듭된 검진과 방역 등으로 경기를 치르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김광현은 호텔에 갇힌 채 또 하염없는 시간을 보내야 했다. 세인트루이스는 7월 30일 미네소타전을 마지막으로 격리에 들어갔고, 8월 16일이 돼서야 다시 경기를 치를 수 있었다. 그 사이 김광현의 보직은 또 선발로 바뀌었다. 지독하게 운이 없었다.

미국 진출의 꿈을 이룬 것은 복이었고, 코로나19에 따른 방황은 불운이었다. 오랜 고생 끝, 선발투수로 나서게 된 것은 어쩌면 다시 복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간의 불운은 행운으로 돌아와 김광현을 돕고 있다.

김광현은 9월 1일 신시내티전에 선발 등판해 5이닝을 3안타 무실점으로 막고 팀의 16-2 승리를 이끌어 시즌 2승째를 따냈다. 선발 복귀 뒤 20.2이닝을 1자책점으로 막아낸 덕분에 선발 평균자책은 0.44밖에 되지 않는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좌완 선발투수가 데뷔 첫 선발 뒤 4경기에서 기록한 평균자책 0.44는 이 부분 역대 2위 기록이다. LA 다저스의 전설적 투수 페르난도 발렌수엘라가 1981년 기록한 0.25의 뒤를 잇는다.

씩씩하게 잘 던지고 있지만, ‘운’의 영향이 적지 않다. 김광현의 인플레이타구 피안타율(BABIP)은 이날 경기 전까지 0.189밖에 되지 않았다. 리그 평균 0.290, 류현진의 BABIP가 0.298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김광현은 맞은 타구가 다 야수 정면을 향하고 있다는 뜻이다. 김광현은 1일 경기에서도 몇 차례 호수비 도움을 받았고, 17이닝 무자책 행진을 이어갈 수 있었다.

김광현은 1일 신시내티전이 끝난 뒤 가진 화상 인터뷰에서 좋은 성적이 나고 있는 이유에 대해 “운이 참 좋은 것 같다. 미국식으로 말하자면 갓 블레스 미라고 할 수 있겠다”라며 웃었다. 김광현의 BABIP는 1일 경기가 끝난 뒤 0.200으로 조금 높아졌다. 행운이 지켜주는 가운데 리그에 대한 적응을 마친다면, 나중에 찾아올 작은 불행을 극복할 수 있다. 아니 어쩌면 이미 앞서 ‘불운’이 지나치게 많이 찾아왔다. 야구의 신이 진짜로 있다면, 이제 행운을 더 많이 가져다줄 때가 됐다. 김광현의 메이저리그 시즌은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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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05, 2020 at 02:06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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