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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희·박상영의 우리 뭐볼까?] - 김금희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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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06 03:00 입력 2020.11.06 03:0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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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자에게> - 김금희

■최선의 사람들

조금 삐딱하고 고지식해도
자신의 가치를 지키는 사람
진짜 소중한 것이 무얼까
세상이 그렇게 보인다고
모두 그렇게 흘러가는 걸까

한 작가의 소설을 여러 편 읽다 보면, 이 작가가 사람들의 어떤 면에 관심이 많은지 알 수 있다. 나는 제임스 설터라는 외국 작가를 무척 좋아하는데, 그는 위선을 다 발라낸 인간의 적나라한 민낯을 흥미로워하는 작가다. 예를 들어 <어젯밤>이라는 단편에서 그는 인생을 함께한 아내가 죽은 날 밤, 다른 여자와 관계를 갖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다뤘다. 세상에 다양한 사람이 있고 한 인간에게도 다양한 면모가 있지만, 유독 이런 면이 이 작가의 눈길을 끌었을 것이다.

김세희 작가

김세희 작가

그렇다고 설터가 인간군상을 조롱하는 눈으로 보는 건 아니다. 그는 아무런 감정 없이, 해부하듯 글을 쓴다. 그는 인간의 깊이나 품위라는 걸 몸에 걸친 장식적인 옷 정도로 여기는 듯하다. 이렇게 ‘사람들의 어떤 부분에 관심을 갖는가’라는 점은 ‘인간을 어떤 존재로 보는가’로 이어진다. 바로 이것이 한 작가의 작품세계를 결정한다.

설터뿐 아니라 작가들이란 대체로 인간의 어두움에 이끌리는 사람들일 것이다. 내가 이런 작가들의 소설을 좋아해왔기 때문일까? 빛과 어둠이 있다면, 문학은 어둠에 대해, 말하자면 갈등과 모순과 슬픔에 대해 말하는 장르라고 생각했다. 나는 인간의 모순을 철저히 해부하고 까발릴수록 위대한 작품이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것이 이른바 진지한 문학이라고. 하지만 요즘은 과연 그럴까, 묻게 된다. 왜 나는 인간의 신비가 복잡하고 심오한 어두운 면에 있다고 믿어왔던 걸까.

이렇게 생각하게 된 데는 팬데믹 상황도 영향을 미쳤다. 코로나19와 관련된 여러 미래담론 중에서 내게 가장 와닿았던 논의는 ‘가치의 전환’에 관한 것이었다. 자본주의의 폭주, 과잉 발전의 세상에서 우리에게 진짜 소중한 게 무엇인지, 또는 우리가 무엇을 소중하게 여겨야 할지를 묻는 논의들. 진실한 관계, 휴식, 사랑 같은 가치의 소중함이 새로이 와닿는 요즘, 이런 관점에서 문학을 다시 보게 되었다.

이런 생각은 지난 8월 출간된 김금희 작가의 장편소설 <복자에게> 덕분에 환기된 것이기도 하다. 이 소설은 제주를 배경으로 ‘이영초롱’과 ‘고복자’ 두 인물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과거와 현재 모두가 동등한 존재감으로 숨 쉰다. 어린 시절 ‘이영초롱’은 부모님이 사업에 실패하며 제주의 한 부속 섬에 있는 고모에게 맡겨진다. 외롭고 힘겨운 전학 생활을 예상했지만, 영초롱은 그곳에서 복자라는 용감한 친구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단짝이던 둘은 마을 어른들의 갈등 속에서 서로 상처를 주고받고 헤어진다.

소설 속 현재, 판사가 된 영초롱은 재판 중 욕을 했다는 이유로 좌천되어 ‘성산법원’으로 오게 된다. 그리고 복자가 여전히 고고리섬에서 살고 있고, 산재 사건으로 큰 소송을 준비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복자에게>는 여러 매력적인 인물이 등장하는데, 그중 초등학생 영초롱을 좋아했던 동창생 오세가 있다. 그 역시 제주에서 일하고 있는데 어른이 된 영초롱과 복자를 중재하는 역할을 한다. 후반부에 영초롱이 오세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했을 때, 오세가 영초롱에게 말하는 대목이 있다.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며 여러 번 눈물이 났는데, 그중 이 대목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울었다.

“그래, 세상이 그럴 수 있지. 세상이 그렇게 보이고 그렇다고 말할 수는 있겠지. 그런데 영초롱아, 너가 보는 것이 아주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늘 생각했으면 한다. (…) 회사는 자본이니까 너가 말한 대로 흘러갈 수 있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나란 사람도 그렇게 흘러간다고 너가 말할 수 있니?”

이어 오세는 말한다. “너가 최선의 사람이라서 나는 늘 너가 좋았어”라고. ‘최선의 사람’이라는 대목에 눈길이 멈췄다. 그러면서 김금희 작가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하나둘 머릿속을 스쳐갔다. <너무 한낮의 연애>의 양희, <조중균의 세계>의 조중균, <세실리아>의 세실리아와 같은 인물들. 어찌 보면 조금 삐딱하며 고지식하지만, 자신만의 순정한 가치를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들. 이들 모두 최선의 사람들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김금희 작가의 소설을 읽으면 나는 삶을 미화하지 않으면서도 인간의 최선을 믿을 수 있다는 걸 확신하게 된다. 인간의 선의를 소중하게 여기는 소설. 보통의 좋은 사람들, 보통 사람들의 최선의 부분을 사랑하는 소설. 나는 요즘 그런 소설을 읽고 싶고, 쓰고 싶다.

■상실 후에 오는 것들

제주 섬으로 보내진 도시사람
몰락의 공간이었던 곳에서
가족·연인처럼 품어준 친구
가장 소중한 것이었음은
잃고 나서야 깨닫는 걸까

제주도에 관한 소설을 썼던 때가 있었다.

2019년 1월이었다. 회사에 사표를 내고 출퇴근의 종지부를 찍은 나는 모아둔 돈과 퇴직금을 들고 곧장 뉴욕으로 향했다. 굳이 뉴욕, 이란 장소를 택한 건 거창한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고 그냥 될 수 있는 한 먼 곳에 가고 싶어서. 그리고 2007년, 20살 때 잠깐 체류한 적이 있는 도시였기 때문이었다.

박상영 작가

박상영 작가

열흘간의 관광이 끝난 후 친구들이 서울로 가버리고, 나는 내 노트북과 함께 홀로 남았다. 실은 여행을 오기 전 끝내야 했던 원고를 채 끝내지 못해 남은 3주의 여행 기간 동안 일을 해야만 하는 처지였다. 그 전 계절에 회사를 다니면서 무려 600장이 넘는 원고를 쓴지라 도저히 일할 의욕이 나지 않았다. 원래는 하고 싶은 말이 자꾸 떠올라 (실은 분노에 가득 차서) 토하듯 글 쓰는 날들이 많았는데, 이상하게 멍하고 졸리기만 했다. 가뜩이나 시차 적응도 잘 되지 않아 3시간씩 2시간씩 쪼개서 자는 날들이 많았다. 자고 일어나면 연신 울려대는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를 들으며 아 맞다, 이곳은 서울이 아니라 뉴욕이었지 떠올리곤 했었다. 오래된 호텔 방. 뭔가를 쓰지 못한 채 침대에 누우면 내 마지막 연애, 내게 가장 친절했던 연인의 목소리가 자꾸만 떠올랐다.

“난 어릴 적에 육지에 오고 싶었어.”

나를 곧잘 육지 사람이라고 불렀던 제주도 사람. 나와 가장 오랜 기간 연애를 했던 사람이자, 고통과 실패투성이였던 내 20대의 연애사에 유일하게 안정적인 관계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내 마지막 연인의 목소리로 말미암아 내 두 번째 책의 말미를 장식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계속해서 육지 사람 같다고 말했던 그. 나는 그 말이 너무 이상해서 육지와 도시와, 섬과 바다에 대해 떠올리게 되었다. 그가 태어나고 자랐던 섬 제주에는 고씨와 양씨, 부씨가 많고, 온 천지가 귤밭이며, 폭포와 바다와 해녀가 있고, 여름이면 반딧불을 볼 수 있는 서식지가 있다고 했다. 그때의 그가 했던 말들을 떠올리며 나는 그저 관광지에 불과했던 제주가 나에게 특별한 장소가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또한 많은 소중한 것들을 나눠도 결국엔 모든 것을 다 이해하지는 못해 어그러질 수밖에 없었던 관계가 존재한다는 것도 새삼 확인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불현듯 제목이 먼저 떠올랐다.

<대도시의 사랑법>.

김금희의 <복자에게>의 주인공 이영초롱에게도 도시 감각은 매우 특별하다. 서울에서 태어나 누구보다 서울사람으로 자라난 영초롱은 아버지의 사업 실패 후 강제로 제주의 한 섬에 사는 고모의 집으로 보내지게 된다. 영초롱에게 있어서 몰락의 공간이나 다름없다. 후에 영초롱은 자신을 제주에 보낸 아버지에게 이렇게 고백한다. “내가 아빠를 미워했어, 아빠가 실패해서 아빠를 미워했어. 그런데 그러면 나는 아빠가 아니라 실패를 미워하는 셈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러나 영초롱에게 제주의 의미는 곧 변화한다. 지금껏 살아왔던 공간과 너무나도 다른 섬의 삶의 형태에 마음 누일 곳 없던 영초롱에게 복자라는 친구가 다가온다. 복자는 가족처럼, 또 연인처럼 영초롱의 마음을 누일 수 있는 어떤 장소가 되어준다. 모종의 일들로 제주를 떠나고 복자에게 편지를 쓰고 또다시 제주로 돌아온 영초롱에게 복자는 제주의 동의어나 다름이 없다.

소설을 읽는 내내 나는 <대도시의 사랑법>을 썼던 이국의 날들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흐드러지게 아름다운 제주의 풍광과 그 속에 외따라져 고독을 곱씹을 수밖에 없던 영초롱의 얼굴과, 그를 안아주는 복자의 넉넉함 같은 것들을. 영초롱이 복자에게 쓰는 편지를 읽으며 나는 자꾸 뉴욕의 밤, 가장 절실한 어떤 것을 상실했음을 깨달아버린 내 마음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기꺼이 내가 두고 온 세상이 실은 가장 귀하고 아름다운 것이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아버린, 그 상실의 감각을 말이다.

그로부터 고작 18개월의 시간이 지났다는 사실을 믿기 힘들 정도다. 비행기를 타고 어디로 떠나본 지도 까마득해져 버렸고, 도시와 도시는 점점 더 고립되고 단절돼 가고 있다. 나는 세상이 더 나빠질 수 있다는 것, 아니, 아주 높은 확률로 더 나빠질 거라고 확신하는 종류의 인간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시청역 4번 출구 앞에 우체통이 있다고 얘기해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을 꿈꾼다. 상실이 아직 내 최후의 희망까지는 앗아가지 못했다는 사실을 증명해줄 수 있는 그런 사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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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mber 06, 2020 at 01:00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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