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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직은 ‘2등 직원’인가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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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기관 48만 명 무기계약 노동자… 사실상 정규직의 ‘하위직급’ 취급받아

급식실에서 사고를 당한 노동자들의 손 /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교육공무직본부 제공

급식실에서 사고를 당한 노동자들의 손 /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교육공무직본부 제공

학교 급식실은 불과 칼, 기름을 다루는 일터다. 위험한 일터에서 숙련 노동자의 경험은 사고 위험을 낮춘다. 급식실에서 일하는 영양사와 조리사, 조리실무사들은 대부분 10년 이상 경력의 숙련 노동자다. 이들은 민간인 신분으로 공공서비스에 종사하는 무기계약직 노동자다. 기간제·파견용역직이었다가 공공부문 정규직 정책에 따라 무기계약 신분으로 전환됐다. 학교와 같은 교육기관에서는 이들을 ‘공무직’이라고 부른다.

이들에게도 익숙하지 않은 칼날이 있다. 음식물 파쇄기(감량기) 속 칼날이다. 음식물 쓰레기를 갈아서 분말로 만들고 꺼내는 과정에서 급식 노동자들의 손가락은 절단되고 꺾이고 베인다.

박지영(50·가명)씨는 경력 10년차 조리사다. 제주의 한 초등학교 급식실에서 일한다. 많은 날은 하루 100㎏에 달하는 음식물 쓰레기가 나온다. 감량기 최대 용량은 10㎏ 정도라 하루 8차례 이상 파쇄 작업을 한다. 발판을 딛고 올라 음식물을 감량기에 넣는다. 그럴 때면 아파트 베란다에서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미는 모양이 된다. 빵이나 떡볶이, 국수가 나온 날은 배출구 입구에 돌처럼 딱딱한 덩어리가 걸린다. 분말 덩어리를 빼낼 때 간혹 기계가 오작동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때 손을 다치기도 한다.

사고가 나면 어떻게 될까. 음식물 감량기 설치 이후 제주 도내 학교 급식실에서는 사고가 되풀이해서 일어나고 있다. 현재 제주도교육청 소속 175개 학교 급식실에 음식물 감량기가 설치됐는데 2018년 10월 이후 최근까지 4건의 손가락 절단·골절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가 나면 제주도교육청에서 ‘위험한 작업을 할 때는 조심하라’는 취지의 공문을 내려보낸다. 그러면 영양교사가 공문 내용을 급식실 노동자들에게 전달한다. 현재로서는 공문 전달이 안전대책의 전부다. 안전대책을 요구해봤지만 교육당국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박씨는 이 과정에서 차별을 당한다고 느낀다. 박씨는 “교육당국이 우리들의 호소를 들은 체 만 체했다”며 “막말로 공무원이 다쳤으면 이렇게 대응하겠느냐”고 말했다.

산업재해율 높은 학교 급식실 공무직

코로나19 이후 급식실 노동환경은 더 악화됐다. 급식실 노동자는 오전 7시 30분에 출근해 오후 3시 30분 퇴근할 때까지 마스크를 쓰고 일한다. 여름철 열기가 가득한 공간에서 마스크 착용은 온열질환 위험을 높인다. 조리실무사 하수경(46·가명)씨는 “한여름도 아닌데 벌써 머리가 어지럽고 메스껍다”며 “온열질환자가 많이 나올 것 같아 다들 조심한다”고 말했다.

전국 7만2000명에 달하는 학교 급식실 노동자의 산업재해 정도는 다른 교육서비스 직종에 비해 높다. 전체 교육서비스 노동자의 산재 8830건 가운데 52% 이상인 4558건(2011~2017년)이 급식실에서 발생했다. 2018년 한국개발교육원에서 실시한 안전보건진단에서도 학교 급식실의 위험성 평가(21.2%)와 근골격계유해요인 조사(18.8%)에서 개선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자는 안전한 일터에서 일할 권리가 있다. 공무직 노동자들은 공무원법을 적용받는 공무원은 아니지만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는 노동자다. 그럼에도 교육 당국은 이들의 안전 보장 요구에 미온적으로 대처하고 있다. 김은리 전국교육공무직본부 제주지부장은 “공무직이든, 공무원이든 재해위험이 높은 작업환경은 개선돼야 마땅하다”며 “노동자의 안전에 대한 이슈마저 논의 대상에 오르지 못하고 차별받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코로나19 대응 현장에 있는 보건의료 공무직 노동자들도 차별의 벽을 체감하고 있다. 서기정 간호사(광주 동구 보건소 공무직)는 선별진료소에서 근무한다. 코로나19 의심환자가 오면 검체 채취와 관련 민원 응대를 한다. 코로나19는 국가 재난상황으로 대응 업무를 하는 공무원에게는 위험수당이 지급된다. 선별진료소·보건소 역학조사, 접촉자 관리 공무원 등이 해당된다. 보건소 간호직공무원의 경우 한 달에 6만5000원 정도의 비상근무수당(위험수당)을 받는다. 하지만 공무직 간호사들은 지급 대상에서 제외된다. 공무직에는 수당 지급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공무원 수당은 ‘지방공무원 수당 등에 관한 규정’에 따라 지급한다. 위험수당은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에 따른 재난 발생으로 비상근무 명령을 받고 근무하는 공무원’만 받을 수 있다. 공무직 간호사의 경우 간호직공무원과 같은 업무를 하고도 수당 혜택을 받지 못한다. 질병관리본부 소속 공무직 역시 위험수당을 받지 못하는 건 마찬가지다. 서 간호사는 “똑같이 위험한 일을 하는데도 내 노동은 인정받지 못한다는 사실에 박탈감이 느껴진다”며 “보건복지부에도 차별 사실을 전했는데 달라진 건 없다”라고 말했다.

공무직이라는 이유로 위험수당을 미지급하는 것은 대표적인 차별 행위다. 2014년과 2016년 국가인권위원회는 ‘공무원과 같은 부서, 같은 업무환경에서 일하는 공무직(상하수도사업소)에만 위험수당을 지급하지 않는 것은 차별’이라고 판단한 바 있다. 인권위는 해당 지자체에 무기계약직 수당 지급 기준을 개선할 것을 권고했다. 당시 해당 지자체는 ‘지방공무원 수당 등에 관한 규정’에 따라 공무원에게는 위험수당을 지급했지만, 공무직은 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지급하지 않았다.

코로나19 대응에 참여한 보건소 공무직 노동자에게는 위험수당이 지급되지 않는다.(사진은 기사와 관계없음) / 우철훈 선임기자

코로나19 대응에 참여한 보건소 공무직 노동자에게는 위험수당이 지급되지 않는다.(사진은 기사와 관계없음) / 우철훈 선임기자

공무원은 받는 위험수당 공무직은 제외

위험수당을 둘러싼 차별은 현재진행형이다. 농림축산식품부 산하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의 공무직 노동자는 현장지원이 주 업무다. 현장 특성상 멧돼지와 뱀·벌 등 야생동물에 물리는 사고를 자주 겪는다. 차량을 이용한 출장이 잦아 교통사고도 빈번하다. 한 해 발생하는 안전사고는 325건(2017년 기준, 농림축산식품부 노조)에 달한다. 그럼에도 공무직 노동자에게는 위험수당이 지급되지 않는다. 반면 위험직군 공무원들은 위험·민원수당을 받는다.

공무직 노동자의 요구 핵심은 ‘공무원 신분 보장’ 혹은 ‘공무원 수준의 임금 보장’이 아니다. 이들의 요구는 안전한 일터에서 일할 권리와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반영해 달라는 것이다. 2017년 정부가 발표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에는 공무직 임금체계는 “직종별 동일가치노동-동일임금 취지를 반영해 설계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48만 명에 달하는 공공기관 공무직 노동자는 무기계약이라는 고용 특성에 따라 넓은 의미의 ‘정규직’으로 분류하기도 하지만, 실제 노동현장에서는 사실상 정규직의 ‘하위직급’ 취급을 받는다. 공무직은 법령상 인정받는 호칭이 아니다. 이 때문에 공공기관과 지방공기업에 따라서 현장직, 상용직 등 다른 호칭으로 불린다.

호칭처럼 공무직의 처우도 천차만별이다. 동일 업종 공무직끼리도 부처·지자체·기관에 따라 제각각이다. 지자체장과 기관장의 의지에 따라 임금체계와 처우 수준이 결정되는 구조다. 특히 공무직 임금체계는 호봉제·일당제·직무급제·월급제로 나뉘는데, 중앙부처는 호봉제·직무급제를 선호하는 반면 일부 지자체는 일당제를 고수한다. 사실상 아무런 기준이 없는 주먹구구식 시스템으로 운용되는 셈이다. 노사 갈등이 끊이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예컨대 경북 울릉군 공무직 노동자들은 타 지자체 공무직 노동자들이 받고 있는 식대를 받지 못한다. 이들은 하루 일당에 근무 일수를 곱해서 월 급여를 정산받는 일당제로 임금을 받는다. 울릉군공무직노동조합은 근로기준법상 보장된 연장·야간·휴일근무수당조차 제대로 받지 못해 임금체불 피해를 입고 있다고 말한다. 울릉보건의료원 공무직 노동자인 김나영씨(46)는 “급여체계가 엉망이어서 타 지자체 수준만큼이라도 정상화될 필요가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도 울릉군은 실태 조사는커녕 부당노동행위와 노조 탄압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부처·지자체·기관에 따라 처우 제각각

공무직 차별 문제는 공무직의 노동환경과 처우를 규정할 기준의 부재에서 비롯된다. 안전한 노동환경과 동일노동·동일임금처럼 고민할 여지가 없는 원칙도 있지만, 임금체계를 비롯한 처우에 대한 기준은 새로 만들어야 한다. 핵심은 공무직 노동자가 현장에서 겪는 부당한 차별과 신분의 구분에 따라 필연적으로 생기는 차이를 어떻게 구분하느냐에 있다. 뜻을 모으기 쉽지 않은 문제다. 공무직 처우 기준의 비교 대상을 공무원으로 할지 아니면 민간인(정규직)에 맞출지를 놓고도 이견이 생긴다. 지난달 공무직 처우 개선 토론회에서 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문제는 이미 존재하는 격차를 처음에 어떻게, 어떠한 기준을 가지고 메워내느냐에 있다”며 “최초의 합의를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밝혔다.

정부는 지난 3월 공무직위원회를 출범, 공무직 처우 개선에 나섰다. 논의를 통해 공무직제를 신설하고 공무직 법제화를 통해 공무직의 인사·노무 임금체계의 근거를 만들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공무직위원회는 출발부터 내부 분야별 협의회 구성을 놓고 노동계와 마찰을 빚고 있다. 현재 분야별 협의회는 교육기관 분야만 설치될 예정이다.

노동계는 교육기관 외에도 중앙행정기관·지방자치단체·공공기관 등 모두 4개 분야의 협의회 설치를 요구하고 있다. 공무직 분야가 다양한 만큼 세분화된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부는 여러 개의 분야별 협의회를 두는 방식이 부담스럽다는 입장이다. 공무직위원회 관계자는 “분야별 협의회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이렇게 여러 개로 나누다 보면 논의가 무거워져 더디게 진행될 수 있다”고 말했다. 남우근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정책위원은 “공무직위원회가 공무직의 수당 여부를 따지고 노조의 민원을 처리하는 창구 역할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개별 사업장의 문제를 하나하나 들여다보고 해결할 게 아니라 공공부문 인력운영 원칙을 수립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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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e 20, 2020 at 01:30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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