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2일, 광주의 한 폐자재 처리 업체에서 일하던 노동자가 파쇄기에 몸이 끼어 사망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고 김재순씨, 발달장애를 지닌 26세 청년 노동자. 시민대책위의 조사 결과 이 업체는 2인1조 근무 원칙을 지키지 않았고, 최소한의 안전 설비도 부재했으며, 10인 미만의 영세사업장이라 안전관리자 선임 의무 등에서도 제외되어 있었다. 김재순씨는 과거 이 고되고 위험천만한 일을 그만둔 적이 있지만, 3개월 만에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왜? 그가 다른 곳에서 일자리를 찾기란 사실상 불가능했으므로.

이달 3일, 공교롭게도 다시 광주. 24세 발달장애인 자녀를 홀로 돌보던 어머니가 아들을 살해하고 자신의 목숨도 끊는 사건이 발생했다. 성인이 되었지만 사회활동의 기회는 주어지지 않은 반면, 돌봄 지원은 크게 줄어들면서 그 책임은 온전히 가족의 몫이 되었다. 그나마 제한적으로 이용했던 서비스도 코로나19 사태로 모두 중단되면서 어머니는 최후의 선택을 하고 만 것이다. 참담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지만, 이번뿐만은 아니다. 올해 3월에도 제주도에서 비슷한 일이 있었고, 부모가 장애인 자녀를 살해하고 목숨을 끊은 사건은 이 지면에 다 나열하기 어려울 만큼 계속 이어져왔다.
그런데 연달아 접한 비보들로 억장이 무너지던 와중 들려온 또 다른 뉴스. 국무조정실과 고용노동부는 지방자치단체가 지원하는 장애인 일자리에 장애인고용장려금을 지급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시행령 개악안을 발표했고, 정부는 이번 3차 추경안에서 발달장애인 지원 예산을 기존 안보다 약 30%, 100억원이나 삭감해 제출했다. 중증장애인의 일자리는 더 불안정해질 것이고, 발달장애인의 돌봄 지원은 현재의 열악한 상태를 면치 못할 것이다.
1990년, 청년 장애인들을 중심으로 한 대중투쟁을 통해 장애인고용촉진법이 제정되었다. 올해로 법률이 시행된 지 꼭 30년이 되었지만, 장애인의 노동 현실은 말 그대로 답보 상태에 있다. 2000년대 초반, 교육권 문제를 시작으로 장애인 부모들이 거리로 나섰다. 그 이후 발달장애인의 인간다운 삶을 위한 권리를 끊임없이 얘기해왔지만, 정부의 정책은 여전히 시혜적 복지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 사회는 그들의 목소리에 반응은 했을지언정 응답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이 땅의 장애인과 그 가족들은 여전히 ‘장애인도 인간이다’ ‘더 이상 죽을 수 없다’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대학 졸업 후 장애인운동 활동가로 살아오면서, 언제부턴가 삶의 경구로 삼게 된 문장이 하나 있다. ‘희망도 필요 이상으로 크지 않게, 절망도 필요 이상으로 깊지 않게.’ 그러나 나는 이제 그냥 깊게 절망하기로 했다. 우리 사회가 그들만의 세상을 보호하기 위해 현실을 외면하고 얄팍한 대안을 설파했던 것처럼, 어쩌면 나도 나 자신을 보호하고자 저 경구를 삶의 지침으로 삼아왔던 것은 아닌가라는 자괴감. 어쩌면 지금은 솔직하고 치열한 절망이 필요한 시대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희망은 푸른 하늘을 향하고 절망은 암흑의 지하를 향한다. 그러니 내가 발 딛고 서서 살아가는 이 세계 아래로 철저히 절망해들어갈 때, 그 언더그라운드로 파고들어가 지반 자체를 뒤흔들고 갈아엎을 방안을 강구할 때, 지금과는 조금이라도 다른 세상이 만들어질 수 있는 게 아닐는지.
June 13, 2020 at 01:00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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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나는 깊게 절망하기로 했다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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