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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들렀다가 담배부터 배울라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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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18 09:28 입력 2020.10.18 10:3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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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려고 한 건 아닌데 눈이 가긴 해요. 색깔도 알록달록해서 눈에 잘 띄니까요.”

하교 후 간식을 사 먹으러 친구들과 편의점에 들른 중학생 이모양(13)의 시선은 자기도 모르게 담배광고에 꽂힌다. 계산대 앞에 서면 계산내역이 나오는 화면은 안 보여도 담배광고판은 눈에 확 들어오기 때문이다. 서울 중구에 있는 이양의 중학교 정문에서 반경 100m 안에 있는 편의점은 모두 두 곳이다. 두 곳 모두 담배를 판매하는 점포이고 담배 진열장 말고도 담배광고가 여럿 붙어 있다. 눈 돌릴 곳 없는 계산대 앞에서 청소년들은 무방비로 담배광고에 노출된다. 이양과 친구들은 담배를 피우고 싶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다면서도 ‘담배 종류 정말 많네’, ‘담배가 뭐가 좋길래 저렇게 잘 팔리나’ 같은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서울 중구의 한 편의점 내부 곳곳에 담배 광고가 게시되어 있다. / 권도현 기자

서울 중구의 한 편의점 내부 곳곳에 담배 광고가 게시되어 있다. / 권도현 기자

11월부터 담배 광고물 외부노출 단속

오는 11월부터 보건복지부는 2개월간 계도기간을 거친 뒤 내년 1월이 되면 담배소매점의 담배 광고물 외부노출 방지를 위한 지도·점검을 시작한다. 현행 국민건강증진법과 담배사업법은 편의점을 비롯한 담배소매점 내부의 담배광고가 점포 바깥에서 보여선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위반 시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까지 받을 수 있고, 당국의 시정 명령을 따르지 않을 경우 1년 이내의 영업 정지 처분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 이 규정은 2011년 도입된 이래 제대로 된 단속이 이뤄지지 않아 유명무실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담배광고 외부노출을 금지하고 위반 점포에 제재를 가하는 방안은 이미 올해 상반기에 예정된 바 있었다. 그러나 코로나19 확산사태로 경기가 급격히 위축되면서 당국은 해당 조치를 11월로 미뤘다. 복지부가 흡연율을 낮추기 위한 금연 종합대책을 발표하며 담배광고·판촉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기로 한 시점이 지난해였던 점을 감안하면 담배소매점 입장에서도 1년 이상 대비할 기간은 있었던 셈이다.

편의점에 유독 담배 광고물이 많이 붙어 있다는 점에서 당국의 조치로 가장 큰 타격을 입는 쪽은 편의점 점주들이다. 게시하는 담배광고의 개수에 따라 달라지지만, 점주들은 광고물을 설치하는 대가로 담배회사로부터 20만~60만원가량의 광고비를 받기 때문이다. 게다가 담배를 팔아 남기는 이문은 적지만 담배 판매로 들어오는 매출액이 전체 매출의 약 40%를 차지하고, 담배를 사러 편의점에 들르는 소비자들이 많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사실상 담배광고 축소로 이어질 금연대책 때문에 매출 감소를 우려하는 담배 소매점주들의 입장도 이유는 있는 셈이다.

하지만 점포 안에서는 물론 밖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담배광고 때문에 특히 청소년을 흡연으로 유도할 수 있다는 연구 및 조사결과는 지속적으로 나왔다. 복지부와 한국건강증진개발원 국가금연지원센터가 지난해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조사대상 대학생 1500명 중 담배광고나 판촉을 접하고 ‘흡연 호기심이 생겼다’고 답한 비율이 20%를 차지했고, ‘실제 담배를 구매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도 4.8%에 달했다. 서울만 보더라도 초·중·고교 반경 200m 이내 교육환경보호구역에 평균 7곳의 담배 소매점이 있고, 점포 1곳당 담배광고가 평균 22.3개에 달할 정도여서 청소년들이 담배광고에 쉽게 노출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다 구체적으로 편의점 담배광고가 얼마나 눈길을 끄는지를 연구한 결과를 보면 왜 유독 담배광고를 피하기 어려운지를 알 수 있다. 2018년 한국금연학회 학술대회에서 유현재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팀이 발표한 ‘아이트래킹을 활용한 편의점 담배광고의 시선 이동 연구’를 보면 계산대 옆 소형 입간판 형태의 담배 신제품 출시 광고는 조사 참여자 100%가 시선을 향할 정도였다. 이 연구는 중·고등학생을 조사 참여자로 선정해 시선이 향하는 곳을 파악할 수 있는 ‘아이트래킹’ 기기를 착용한 뒤 편의점 안에서 어느 지점에 눈길이 머무르는지를 분석했다. 조사시점 당시 새로 출시되거나 광고물의 크기·형태가 눈에 띄는 특정 상표의 담배 2종이 역시 조사 참여자 전원의 시선을 끌었고, 담배 진열장 역시 95%의 참여자가 시선을 향한 것으로 나타났다.

온라인에서도 담배·흡연 노출 심각

문제는 담배광고를 그냥 바라보기만 하고 돌아서서 잊어버리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더욱 심각하다. 유현재 교수가 조사 참여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심층 면접에서 청소년들은 ‘담배 맛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내며 “누가 옆에서 하나 주면 피워볼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답했다. 잠재적 흡연 시도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다. 유 교수는 “담배광고는 청소년들의 흡연 시도 및 시작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며 “청소년들의 흡연 예방을 위해서는 편의점 담배광고 규제 및 진열 금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담배광고가 흡연을 하지 않는 청소년에게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점포 외부노출만 규제할 것이 아니라 아예 광고 자체를 금지시키는 등의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한국은 세계보건기구(WHO)가 채택한 담배규제기본협약을 2005년 비준했지만 2018년 기준 협약 이행률은 66.7%에 그쳤다. 특히 담배광고·판촉·후원 활동을 포괄적으로 금지하는 협약 제13조의 이행비율은 0%로 조치가 전무했고, 담배 공급을 줄이기 위해 담배 판매자나 연초 경작 농가에 대체활동을 지원하는 대책 역시 이행률 0%를 기록했다.

오프라인만이 아니라 인터넷 등 온라인 공간에서도 담배와 흡연행위가 연령을 가리지 않고 노출되는 문제 역시 심각한 실정이다. 정부가 지난해 확인한 인터넷 사이트에서의 법령 위반사례 278건 중 법으로 금지된 인터넷 담배광고가 227건(81.7%)으로 가장 많았고, 뒤이어 인터넷을 통한 담배 판매도 31건(11.2%) 확인됐다. 뿐만 아니라 대중적으로 주목도가 높은 드라마와 영화, 웹툰 콘텐츠 131개 작품 중 전체의 54.9%인 72개 작품에서 담배와 흡연 장면이 자주 등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유튜브 영상의 경우 전체이용가 영상 537건(97.6%)에서 흡연 장면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유럽에서는 유럽연합 회원국 가운데 마지막으로 거리 담배광고를 허용해 왔던 독일이 지난 9월 전면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한국도 각종 미디어를 통한 담배광고를 금지해온 점은 비슷하지만 사실상 담배광고가 거리에선 노출돼 왔기 때문에 예정된 대로 점포 외부 광고 노출을 실질적으로 막고 전자담배 기기를 활용한 대체 판촉행위까지 금지해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서홍관 한국금연운동협의회장(국립암센터 금연지원센터)은 “담배광고가 여러 채널에서 막혀 있다고는 해도 인터넷 등을 통해 신제품 출시 공고를 이용한 사실상의 홍보 통로는 열려 있기 때문에 앞으로 정부가 이 문제도 규제해야 사회 전체가 담배광고의 홍수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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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tober 18, 2020 at 07:28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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