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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무는 트럼피즘, 수세 몰린 포퓰리스트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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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1월 24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열린 ‘칠면조 사면식’ 행사에 참석해 말하고 있다. / 워싱턴|로이터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1월 24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열린 ‘칠면조 사면식’ 행사에 참석해 말하고 있다. / 워싱턴|로이터연합뉴스

“트럼프 효과가 더 이상 먹혀들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루저(패배자)이기 때문이다.” 폴란드의 로베르트 비에드론 전 유럽연합(EU) 의회 의원은 23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대선 패배로 유럽의 포퓰리즘 지도가 바뀔 것이라고 예측했다. ‘동유럽의 트럼프’로 불리는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를 비롯해 폴란드의 안제이 두다 대통령, 야네스 얀사 슬로베니아 총리 등은 유럽 동쪽에서 극우바람을 일으킨 포퓰리스트 정치인들이다. 이들은 지난 4년간 대서양 너머 트럼프 대통령과의 유대감을 과시하며 정치적 입지를 굳혀왔지만, ‘트럼프 시대’가 막을 내리면서 비빌 언덕이 사라졌다. 트럼피즘의 쇠퇴와 함께 전 세계에서 활약하던 포퓰리스트 정치인들의 미래에도 어둠이 드리우고 있다.

■우정 쌓은 세계의 트럼프들

세계에 퍼진 포퓰리즘 바람은 갑작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2008~2009년 세계 금융위기는 각국 노동자 계층의 ‘경제 불평등’ 현실을 들춰냈다. 세계무역에서 소외되고 뒤처진 이들, 신기술과 첨단산업에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편에 선 ‘포퓰리스트’들에 열광했다. 2016년 영국에선 ‘반이민’과 ‘반EU’를 내건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국민투표로 포퓰리즘 시대가 열렸다. 이탈리아의 마테오 살비니, 프랑스의 마린 르펜 등 유럽에선 극우 정치인도 득세했다.

정치권의 아웃사이더였던 트럼프 대통령도 포퓰리즘을 내세워 기성정치권에 뿌리를 내렸다. 그는 민주당으로 대변되는 소수의 엘리트 정치세력들이 ‘평범한 사람들’ 대신 여성·이민자·무슬림 같은 정치적 소수자에게 특혜를 부여했다고 주장해 백인 노동자 계층의 마음을 샀다. 포퓰리즘은 남미와 태평양 너머로도 퍼졌다.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은 ‘남미의 트럼프’라고 불릴 정도로 트럼프 대통령의 행태를 쏙 빼닮았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 등도 ‘트럼피즘’에 기대 세력을 키웠다.

트럼피즘은 유럽의 걱정거리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기후변화·무역·안보를 놓고 독일·프랑스 등과 사사건건 갈등을 빚으면서다. 하지만 사이가 틀어진 서유럽과 달리 트럼프 대통령은 동유럽 지도자들과는 유대를 돈독히 해왔다. 세계 최강국 지도자인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를 받으며 이들 나라는 사법권 독립 침해, 언론 탄압 등을 감행해 왔다. EU의 압박에도 초연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했다.

빅토르 오르반(왼쪽) 헝가리 총리와 야네스 얀사 슬로베니아 총리 / 로이터 연합뉴스

빅토르 오르반(왼쪽) 헝가리 총리와 야네스 얀사 슬로베니아 총리 / 로이터 연합뉴스

그러나 조 바이든 당선자가 대통령에 취임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바이든 당선자는 폴란드·헝가리 지도자들을 “깡패”라고 지칭하면서 다자주의를 복원하겠다고 약속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실패로 “유럽 포퓰리스트들은 강력한 영감과 정치적 산소를 빼앗겼다”고 폴리티코 유럽판은 평가했다. 특히 최근 헝가리와 폴란드는 EU의 장기 예산안과 코로나19 경제회복기금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하며 EU를 분열시켰지만, ‘우군’ 미국을 잃은 이후로는 ‘나 홀로’ 행보를 이어가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폴리티코는 “양국은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 없이는 앞으로 EU당국에 덜 대립적이고 실리주의적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브라질의 보우소나루 대통령도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 그는 2022년 재선을 노리고 있지만, 바이든 당선 확정 후 브라질에선 “다음은 보우소나루”(#BolsonaroEoProximo)라는 해시태그가 유행하고 있다. 이미 코로나19 대응실패로 비판의 소용돌이에 선 그가 앞으로도 포퓰리즘으로 정치생명을 연장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브라질 일간 폴랴지상파울루는 “트럼프의 패배는 문명을 공격한 데 대한 심판이다. 보우소나루에겐 교훈이다”라고 평했다.

G20 정상회의에 참석한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 / 연합뉴스

G20 정상회의에 참석한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 / 연합뉴스

■트럼피즘은 쉽게 사라질까?

그럼에도 뉴욕타임스(NYT) 등 미 주요 매체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존재감이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체 개표 결과에서 바이든 당선자에 밀렸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2016년 대선 때보다 약 1100만표를 더 얻으며 유권자의 약 47%에 달하는 막강한 추종세력을 증명했다. 대선 결과에 승복해도 트럼프 대통령은 2024년에 다시 대권에 도전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이번 총선에서 ‘트럼프 키즈’로 분류되는 극우 인물들과 트럼프 최측근까지 의석을 차지하면서 ‘트럼피즘’은 정치 무대에서 오래 존재감을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행정부가 개혁 정책으로 미국사회 곳곳에서 곪아터진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하면, 결국 백인 노동자의 불안을 파고들었던 ‘포퓰리즘’의 에필로그는 영원히 계속될 수도 있다. ‘반포퓰리즘 세력’은 유권자들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정책과 비전으로 승부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스탠퍼드대 그지말라-부세 교수는 “왜 그렇게 많은 유권자가 포퓰리스트 정치인들에게 매력을 느끼는지 비난할 것이 아니라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피즘을 끝내려면 미국이 망가졌다는 것을 인정하고 개혁을 시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근 칼럼에서 “수십년간 진행된 사회양극화는 트럼피즘을 몰고 왔다. 트럼피즘을 끝내고 미국이 부활하기까지도 똑같이 수십년이 걸릴 것”이라며 “모든 부활이 죽음에서 시작하듯, 미국이 망가졌다는 것을 인정하는 데서 트럼피즘 종말의 첫발을 내디딜 수 있다”고 진단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또한 “우파 포퓰리즘 지도자의 근간인 반이민 정책이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 가려졌지만 팬데믹으로 촉발된 경제적 고통이 이들에게 또 다른 가능성을 열어준다”면서 “유럽의 극우정당, 미 공화당의 극우 정치인들이 언제든 다시 트럼피즘을 휘두를 수 있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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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mber 29, 2020 at 06:21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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