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처법 통과 이후 당내 기류 변화… 강경파 목소리 커질 듯
가만히 있어도 지지율이 오르는 국민의힘의 ‘가마니(가만히) 전략’에는 미래가 있을까. 국민의힘이 앞으로도 계속 가마니 전략으로 나갈지, 아니면 새로운 변화를 시도할지 관심이 모아진다.
국민의힘은 12월 들어 리얼미터 정기 여론조사에서 한때 민주당의 지지율을 넘어섰다. 그동안 당내 혁신을 하지 않았지만, ‘추·윤 갈등’(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갈등) 때문에 지지율 역전을 가져옴으로써 가마니 전략이 적중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분위기가 좋아지면서, 앞으로도 계속 가마니 전략만 취할 것인지 선택의 시간이 국민의힘에 다가왔다.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꺼낸 혁신의 카드는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구속에 대한 당 차원의 대국민 사과였다. 계획된 날은 12월 9일이었다. 박 전 대통령 탄핵 4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왜 지금 시점에’ 당내 볼멘소리
하지만 이날 대국민 사과는 이뤄지지 못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장애물은 당내 반발이었다. 사과 반대를 외치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나왔다. 급기야 3선 의원들이 김 위원장을 만나 사과에 반대의견을 전달했다. 마침 12월 9일은 정기국회의 마지막 날이었다. 공수처법(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법) 개정안을 놓고 여야가 며칠 동안 격돌했다. 대국민 사과 이슈는 공수처법에 밀려났다. 결국 대국민 사과는 연기됐다.
국민의힘이 꺼낸 또 하나의 혁신 카드는 당협 위원장 물갈이였다. 국민의힘은 12월 7일 당무감사 결과를 발표하고, 원외 당협 위원장 3명 중 1명을 교체하는 안을 발표했다. 138개 원외 당협 위원장 중 49곳(35.5%)이 대상이 된다. 교체 대상 명단에는 김진태·민경욱·전희경 전 의원 등 강경 보수 정치인이 포함돼 있다. 이 안도 당내에서 반발의 목소리가 크다.
두가지 혁신에 대한 당내의 주된 반응은 ‘왜 지금 시점에’라는 것이다. 당내 한 관계자인 A씨는 “지금 이 시점에 굳이 대국민 사과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사과를 하려면 비대위 출범 초기에 해야 했고, 지금은 바람직한 시점이 아니라는 것이다. A씨는 “원외 당협 위원장 교체 역시 서울지역에 원외 위원장이 많은데 내년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지역의 조직을 흔들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당 지지율을 보면 잘못된 선택이라는 견해가 있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국민의힘이 혁신을 하려고 했으면 당 지지율이 가장 낮을 때 해야 했다”면서 “지금 지지율이 조금 오른 상태에서 하려고 하니, 당내 기득권의 반발에 부딪힌 것”이라고 말했다. 홍 소장은 “당내 기득권 세력은 지금 가만히 있어도, 여당이 매번 실수를 해서 국민의힘 지지율이 올라간다고 본다”면서 “이들은 굳이 지금 당 혁신을 할 이유가 없게 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20대 국회 때까지 친박·비박으로 계파 싸움에 휩싸였던 국민의힘은 탄핵 사과를 둘러싸고 영남 대 비영남으로 대결구도가 바뀌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영남의 중진 의원들을 중심으로 ‘사과 반대론’이 나오고, 수도권 의원과 초선 의원들을 중심으로 ‘사과 찬성론’이 나온다. 장성철 공감과 논쟁 정책센터 소장은 “‘박근혜 향수’에 기대온 영남권 중진들은 사과에 대해 반대하고 있으나, 국민의힘이 수도권 선거에서 승리하려면 탄핵 사과는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당 지지율 역전에 대한 의문
탄핵 사과가 가져올 효과에 대한 기대도 서로 다르다. 영남권 중진은 지금 시점에서 효과가 거의 없다는 생각을 하고, 수도권 의원과 초선 의원들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사과를 하면 그만큼 지지율 상승의 효과가 있다고 본다. A씨는 “지금 이 시점에서 대국민 사과를 하고 당협 위원장을 교체한다고 해서 중도층이 국민의힘을 지지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 오산”이라고 말했다. 장 소장은 “국민의힘으로서는 영남권 정당 100석에 만족하면 모를까, 더 앞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민심이 더 이상이 사과하지 않아도 된다고 할 때까지 사과해 진정성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의 다른 관계자인 B씨는 “탄핵에 찬성했던 정치인이 아니라 친박이나 탄핵안에 반대했던 세력이 사과해야 진정한 사과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당시 비박(非朴)의 사과로는 당의 지지율을 상승시키기에 충분하지가 않다는 것이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소장은 “탄핵과 구속에 대한 사과가 중도층의 마음을 국민의힘으로 다시 오게 하는 실질적인 효과를 가져오려면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직접 사과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과의 진정성이 국민에게 제대로 전달돼야 실질적인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대국민 사과 논쟁’은 민주당 지지율 하락, 국민의힘 지지율 상승이라는 정국을 해석하는 측면에서 차이가 난다. B씨는 “국민은 이명박 전 대통령 구속과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에 국민의힘에 등 돌렸고, 문재인 정권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다”라고 말했다. 여론은 여전히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을 용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홍형식 소장은 “국민의힘 당내 기득권 세력은 문재인 정권이 검찰개혁이나 공수처 입법 등을 힘으로 밀어붙이는 것을 보니까, 과거 이명박·박근혜 정부 당시 국민의힘이 잘못한 것이 아니라 옳았다고 여기는 듯하다”고 말했다. 홍 소장은 “때문에 하필이면 여론이 좋은 시기에 왜 쓸데없이 탄핵 사과의 프레임으로 끌려들어 가느냐고 반대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과연 국민의힘이 민주당 지지율을 누르고 역전했을까에 대해서는 의문의 목소리가 많다. 홍형식 소장은 “특정 여론조사에서만 지지율 역전이 이뤄졌다”라면서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는 민주당의 지지율이 하락하고, 국민의힘이 지지율이 조금 상승하면서 격차가 줄어들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12월 1주 조사에서 지지율 역전 현상이 나타난 리얼미터 조사에서는 12월 2주 조사에서 다시 민주당의 지지율이 높아졌다. 다시 역전이 이뤄진 것이다.
엄경영 소장은 “여론조사에서 응답률을 눈여겨봐야 한다”면서 “지지율 역전 현상이 나타난 리얼미터 조사에서는 응답률이 4.4%였다”고 말했다. 정기여론조사를 하는 갤럽(전화면접조사 100%)의 12월 1주 여론조사의 응답률은 15%였다. 여기에서 민주당은 33%의 지지율로 20%의 국민의힘보다 훨씬 높은 지지율을 보였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의 홈페이지 내용 참조). 한국리서치 등 4개 언론사가 전화면접조사로 실시한 12월 초 조사는 응답률이 35.9%에 달했다. 이 조사에서 민주당의 지지율은 34%, 국민의힘 지지율은 22%였다. 엄경영 소장은 “응답률이 낮은 조사에서는 문재인 정권을 싫어하는 응답자가 적극적으로 조사에 응해 국민의힘 지지율이 높게 나타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응답률이 높은 조사의 결과를 보면 여전히 민주당 지지율이 더 높다는 것이다. 엄 소장은 “추·윤 갈등으로 국민의힘이 반사이익을 챙기긴 했지만, 이 국면이 가라앉으면 다시 4월의 총선 지형으로 되돌아갈 수도 있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이 민주당 지지율 하락의 반사이익을 얻는 데에는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지지율 상승과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민주당의 지지율이 떨어지면 떨어질수록 윤 총장의 차기 대권주자 지지율이 상승하는 반비례의 현상을 보이기 때문이다. 윤 총장이 여권에서 탄압을 받는 인물로 비치면서 윤 총장의 개인 지지율이 올라가고 민주당의 지지율이 떨어졌다. 동시에 국민의힘 지지율이 상대적으로 올라가는 것처럼 보인 것이다. 엄경영 소장은 “추·윤 갈등으로 여권에 대한 불만의 성과물이 국민의힘에 대한 지지로 바로 가는 것이 아니라 윤 총장에게 몰려가는 형국”이라고 말했다. 홍형식 소장은 “차기 대권주자 싸움에서 여권은 철저히 민주당이라는 당 중심으로 가겠지만, 야권은 국민의힘이라는 당이 아니라 윤석열 총장 같은 인물 중심으로 갈 가능성이 커졌다”고 말했다.
극우세력과 힘 합칠까
대국민 사과를 추진하는 김종인 비대위원장의 의지와 달리 상황은 거꾸로 전개되고 있다. 민주당이 공수처법 개정안을 비롯한 개혁 입법을 몰아붙인 이후에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기류가 변화하는 조짐이 보인다. 강경파들이 목소리를 높이는 형국이다. 12월 10일 열린 ‘정당·시민단체 대표자 연석회의’가 대표적인 예다. 이날 회의에 국민의힘에서는 주호영 원내대표가 참석했다. 홍준표 무소속 의원과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 등이 발언했다. 국민의힘이 극우세력과 선을 그은 데 대한 불만의 목소리도 나왔다. 국민의힘과 국민의당을 비롯해 국민통합연대, 바른사회시민회의, 원자력국민연대, 한반도인권과통일을위한변호사모임 등 보수단체들이 참여했다. 이날 각 단체는 ‘정권 퇴진과 국가 정상화라는 대의명분 아래 일치단결할 것’이라는 성명서를 채택했다. 김종인 비대위원장은 이들 단체와의 연대 투쟁에 대해 “범야권 연대, 그런 개념을 가지고서 투쟁을 할 수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강경 보수세력과는 함께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국민의힘에는 지금까지의 가마니 전략에서 또 다른 선택지가 생긴 셈이다. 오른쪽 세력과 연대해 문재인 정권과 투쟁하는 방식이다. 왼쪽으로 한걸음 가서 중도층의 민심을 끌어당기는 방식과는 반대 방향이다. 오른쪽으로 갈 수 없고, 왼쪽으로도 반대가 심하다면, 이도 저도 아닌 가마니 전략도 여전히 유효한 것처럼 보인다. 엄경영 소장은 “국민의힘으로서는 정치 지형을 바꿔야 하는데 자꾸만 과거 보수세력의 대변 정당으로만 안주하려고 한다”면서 “여당의 실수로 얻은 반사이익만으로 선거에서 승리할 수 없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이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혁신에 나서야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장성철 소장은 “레미콘 트럭에 실린 시멘트는 계속 움직이지 않으면 굳게 된다”면서 “정당은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 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December 12, 2020 at 11:58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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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덕을 본 국민의힘, 앞으로도 ‘가만히’?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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