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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집이 없어' 더 행복한 사회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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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나는 20년간 거주할 수 있는 서울시 장기전세주택에 1억원 초반대의 보증금으로 입주했다. 당시 친구는 같은 단지 같은 면적(전용 59㎡)의 아파트를 2억3000만원에 분양받았다. 20년간 대출금을 갚을 현실이 캄캄하다고 했지만 낙담은 잠시였다. 이후 집값은 2013년에 4억원, 2017년에 5억원을 넘겼고 2020년 6월에는 8억원이 되었다. 같은 단지의 84㎡ 아파트를 3억8000만원에 매입한 지인은 생활비도 쪼들려 저축을 못했다지만 최근 10억5000만원에 집을 팔았다. 처음에는 여길 꼭 사야 하냐면서 가족끼리 갈등이 있었다는데, 이내 늘 웃음꽃이었다.

오찬호 <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 저자

오찬호 <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 저자

세 가정의 세상 보는 눈이 비슷할 리 없다. 건너편 아파트가 재개발되면서 59㎡ 면적이 13억원에 이르자, 나는 미친 세상이라며 욕을 했지만 그들은 ‘우리 아파트는 임대가 많아서 저기처럼 안 오른다’면서 무례한 분석을 일삼았다. 내가 제주의 시골로 이사를 온 이유에는 부동산 광풍을 훈풍이라 여기는 이웃을 마주해야 하는 짜증도 영향을 미쳤다. 인사치레로 부러움을 표하니, “열심히 살았으니 보상받는 거죠”라고 말하는 사람과 어찌 대화를 이어갈 수 있단 말인가.

무리를 해서라도 집을 샀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자신이 한심하다. 내가 세상을 잘 못 산 느낌에 괴로워할 동안, 비슷한 처지의 많은 이들이 영혼까지 끌어서 집을 샀다. 목숨 걸고 내 집을 장만한 이들에게 집값 하락은 호재가 아니라 위기일 뿐이다. ‘반드시 집값을 잡겠다!’고 정부가 다짐할수록, ‘가만히 당하진 않겠다!’는 투지를 불태운다. 집에 인생을 건 사람이 넘쳐나니, 집값을 잡으려는 모든 시도가 실패한다.

정책의 헛발질 속에 그린벨트 해제, 행정수도 이전의 카드가 등장하지만 또 다른 노른자 땅덩어리의 좌표를 국가가 알려주는 꼴에 불과하다. 서울시는 집값의 40%만 내고 입주해 나머지를 30년간 상환하는 아파트를 선보인다지만 집값이 천정부지로 오르길 기대하는 개인을 양산하는 게 공익사업인지 의문이다. 경기도는 입주자격을 무주택자로만 제한해 30년간 거주할 수 있는 기본주택을 준비 중이라는데, 취지는 좋지만 집 없는 사람 간 복불복 게임에 불과하다. 높은 경쟁률을 체감한 이들은, 가진 돈 1억원에 2억원을 대출받아 3억원에 산 집이 조만간 5억원이 되길 욕망하는 집주인이 된다.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 ‘집 따위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이들에게 엄청난 혜택을 주는 게 수요를 줄일 유일한 해법이다. 무주택자에게 청약가점을 주면서 내 집을 장만할 기회를 주는 게 아니라, 일평생 무소유를 실천한 이들을 국가가 요람에서 무덤까지 책임지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사람을 현혹시키는 마법의 단어 ‘시세차익’과 비교해서 뒤지지 않아야 한다. ‘집을 소유하지 않겠다!’는 동기 부여가 가능해야 한다. 교육비도, 병원비도, 보험료도 무주택자라서 저렴해야 한다. 커피를 한 잔 마셔도, 영화를 보아도, 기차를 타도 할인받아야 한다. 생색내기 수준이 아니라, 결혼하는 자녀에게 “살아보니 그때 집을 안 산 게 신의 한 수였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회가 되면 자연스레 집값 잡겠다는 정책을 환영하는 이도 많아질 것이다. 집을 ‘소유하지 않은’ 덕택에 사람의 미래가 결코 망하지 않는다는 예측이 가능하다면 꽤 괜찮은 상상력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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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 27, 2020 at 01:00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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