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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자루 든 레바논 시민들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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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13 21:08 입력 2020.08.13 21:1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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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 현장 청소 봉사 줄이어약탈 방지 경비·기록 작업도“인생 최악의 시간이었지만공동체 일원이란 느낌 받아”

빗자루 든 레바논 시민들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항구에서 지난 4일(현지시간) 폭발 참사가 일어난 후 사람들은 “모든 것이 파괴됐다”고 절규했다. 거리에는 “정권 퇴진”을 외치는 분노가 가득찼다. 사실 이것만이 다는 아니다. 시민 수백명은 피해 현장을 찾아 청소에 나섰다. 이재민과 부상자들이 집으로 돌아왔을 때 조금이라도 안정된 공간에 들어설 수 있게 돕기 위해서였다. 돕는 사람도, 도움을 받는 사람도 ‘희망’을 본다고 말한다.

한 비정부기구(NGO) 소속인 아피프 아야드는 12일 미국 NBC 뉴스에 “이 도시는 이전에도 몇번이나 파괴됐지만 매번 다시 일어섰다. 그때마다 도시를 재건한 건 정부가 아니라 바로 시민들이었다”고 말했다. 미셸 아운 레바논 대통령은 폭발 참사 피해액이 150억달러(약 17조7000억원)를 넘는다고 이날 밝혔다. 사망자는 171명으로 늘었다. 부상자도 6000여명에 달하고, 이재민은 30만명가량이다. 하지만 시련은 공동체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엔지니어인 마르완(33)과 건축가인 제이나(32)는 폭발 참사 다음날부터 피해 지역에서 봉사활동을 벌였다. ‘질산암모늄 2750t’의 폭발 위력은 매우 컸다. 항구에서 10㎞ 떨어진 곳까지 피해를 입었다. 어떤 건물이 언제 무너질지 몰랐다. 두 사람은 비교적 안전한 건물에 들어가 생존자가 있는지 확인하는 작업부터 했다. 그 이후 부서진 건물 곳곳을 돌며 청소를 했다. 마르완은 벽이 무너진 아파트 계단과 벽에서 핏자국을 닦고 바닥에서 유리 파편을 쓸어 담았다. 제이나는 지난 11일 워싱턴포스트에 “이 나라를 고칠 희망은 결국 우리밖에 없다”고 말했다.

사우디아라비아 매체 아랍뉴스에 따르면 ‘청소 봉사대’엔 베이루트 시민부터 레바논 다른 지역 사람들, 외국인들도 참여하고 있다. 시위 중심지이기도 한 베이루트 순교자광장엔 ‘자원봉사 센터’가 세워졌다. 이곳엔 이재민을 위한 물과 음식 등 기부 물품들이 쌓였다. 봉사자들은 청소뿐만 아니라 약탈을 막기 위해 빈 상가에서 경비를 서거나, 피해 복구가 필요한 곳을 찾아 기록하는 작업도 한다.

젊은층도 많다. 아메리칸베이루트대학에 다니는 아나스(21)는 부모님 집을 수리하기 위해 현장에 왔다가 더 ‘긴급한 상황’이 있다고 판단했다. 그는 이웃의 부상자들을 병원으로 옮겼다. 아나스는 “이성적으로 도움을 준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가족을 잃은 사람들을 직접 보니 마음이 크게 흔들렸다”고 했다. 아나스의 친구인 자드(21)는 폭발 참사를 계기로 해외 이주 계획을 접기로 했다. 자드는 “할아버지가 전쟁을 이야기할 때, 과거 일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또 다른 전쟁이 아닌지 실감한다”며 “나보다 어린 아이들에게 레바논에서 살 수 없어서 떠났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집 전체가 완전히 파괴됐다는 아담(32)은 “언제쯤 집에 돌아올 수 있을까 해서 와보면 볼 때마다 집이 깨끗해져 있었다”며 “지난주는 내 인생 최악의 시간이었지만, 어느 때보다 내가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고 말했다. 주민들도 커피와 물, 마스크 등을 나누며 봉사자들을 반기고 있다.

주민들과 봉사자들은 만날 때마다 마치 ‘탁구공’이 왔다 갔다 하듯 똑같은 인사말을 주고받는다. “신께서 당신을 잘 보살펴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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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ust 13, 2020 at 07:08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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