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rch

일상 곳곳에 침투하는 ‘뒷광고’의 유혹 - 경향신문

was-trend-was.blogspot.com

자영업자 정모씨(37)는 지난달 자주 이용하던 한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 접속하던 중 다른 이용자가 보낸 메시지 한통을 받았다. 현재 한 인터넷 쇼핑몰에서 진행 중인 식료품 할인판매 행사 정보를 게시판에 올려주면 소정의 사례를 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게시판에 올릴 내용과 양식은 이미 만들어뒀으니 복사·붙여넣기만 하면 되는데, 쪽지를 보낸 이용자는 자신이 글을 올릴 권한이 없어 부탁한다고 썼다. 해당 게시판은 사이트 이용자들이 자발적으로 ‘가성비’가 좋거나 할인폭이 큰 상품의 정보를 올리는 공간이었지만 이전부터 업자가 이용자를 가장해 홍보하는 ‘바이럴 마케팅’이 판친다는 불평이 쏟아지던 곳이기도 했다.

“솔직히 사례비를 준다는 말에 혹하긴 했는데 다른 일 하느라 잊어버리고 있는 동안 유튜버들 ‘뒷광고’ 논란이 터졌더라고요.”

유료광고 표시 없이 ‘뒷광고’를 했다는 비판을 받은 유튜버(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보겸, 쯔양, 엠브로, 한혜연)들이 사과하고 있다. / 유튜브 화면 캡처

유료광고 표시 없이 ‘뒷광고’를 했다는 비판을 받은 유튜버(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보겸, 쯔양, 엠브로, 한혜연)들이 사과하고 있다. / 유튜브 화면 캡처

■9월부터 유료광고 표시 안 하면 과태료

정씨는 뒤늦게 게시 부탁을 받았던 해당 행사를 인터넷에서 검색해봤다. 성격이 비슷한 여러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같은 판매정보를 알리는 글들이 올라와 있었다. 한 곳에서는 정씨처럼 사이트 내 메시지로 바이럴 마케팅 의뢰를 받은 이용자가 자신이 받은 메시지 내용을 폭로해 이용자들의 공분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정씨는 “자주 이용하던 사이트에 바이럴 광고가 전혀 없을 거라고 기대하진 않았지만 막상 평범한 이용자들까지 광고에 동원될 정도로 만연해 있다고 생각하니 말 그대로 ‘믿을 놈 아무도 없구나’ 싶어 씁쓸하다”고 말했다.

영상에 유료광고를 포함하고 있으면서도 그 사실을 표시하지 않아 불거진 유튜브 ‘뒷광고’ 사태가 확산되고 있다. 유명 유튜버들뿐만 아니라 평범한 인터넷 사이트 이용자들까지 광고와 마케팅에 끌어들이는 세태까지 고려하면 광고로부터 자유로운 공간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수십만에서 수백만에 이르는 구독자를 모은 유튜버는 물론이고, 장기간 성실하게 인터넷 커뮤니티 활동을 해오며 평판을 높인 일반 이용자 역시 ‘돈 앞에 장사 없다’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광고를 해준 대가는 유튜버에게 돌아간다. 광고인 줄도 모르고 해당 영상을 본 시청자에게는 불신이 남는다. 개인의 불신도 모이면 사회적 비용이 된다. 영국의 싱크탱크 레가툼연구소의 ‘2019 세계번영지수’를 보면 한국사회는 ‘저신뢰 사회’로 분류된다. 한국은 종합지수에선 세계 167개국 중 28번째로 살기 좋은 나라로 상위권에 올랐으나, ‘구성원 간 상호신뢰나 협조·네트워크’를 의미하는 사회적 자본 부문의 순위는 145위에 불과했다.

그나마 그동안 ‘뒷광고’를 해온 유튜버들은 논란이 커지면서 스스로 과거에 만든 광고 포함 콘텐츠에 광고표시를 하고 사과문도 올리는 등 대응을 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의 현행 ‘추천·보증 등에 관한 표시·광고 심사 지침’에도 유료광고 고지의무는 있었지만 오는 9월부터 시행되는 지침 개정안에 따르면 누구나 광고라는 사실을 인지할 수 있는 공개적 유료광고만 가능해진다. 이에 따라 유료광고라고 표시하는 것만이 아니라 상품이나 금액을 협찬이나 광고비 등의 명목으로 받았다는 사실까지 자세히 밝혀야 하고, 만일 이를 위반하면 과태료를 내야 한다. 유튜버들이 앞다퉈 유료광고 고지에 나서는 이유기도 하다.

그러나 업자가 자신의 영업·홍보 활동임을 밝히지 않고 게시글을 올리거나 다른 이용자의 명의를 빌려 글을 올리는 등의 행위는 사실상 광고인지 아닌지 구분하기도 어려울 뿐더러 규제하기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게다가 아예 광고 내용을 담은 콘텐츠를 배포하는 것이 제한된 의료광고는 실제로 바이럴 마케팅 업체와 유튜버 등의 인플루언서, 콘텐츠를 게시하는 일반 이용자 모두 광고임을 밝히면 오히려 관련법을 위반하게 되므로 광고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교묘하게 마케팅을 하고 있다.

| 김상민 화백

| 김상민 화백

■광고인지 알 수 없는 교묘한 마케팅

병·의원과 소비자 사이를 광고로 연결하는 역할을 맡은 바이럴 마케팅 업계 관계자들은 이미 알려진 마케팅 기법은 한눈에 구분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점차 진화하는 마케팅 방식 때문에 업계 관계자들도 다른 업체의 기발한 마케팅 방식을 뒤늦게 알게 되는 경우도 없지 않다고도 말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처음 봤을 때 가장 감탄했던 사례는 살짝 어설프게 광고 느낌이 날 정도로 간접적으로 특정 병원을 홍보하는 글을 올린 뒤, 그 글을 댓글로 설득력 있게 반박하면서 진짜 홍보하려고 하는 병원의 의료진과 수술기계가 더 낫다고 알리는 방식이었다”고 말했다.

이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내 돈으로 내가 산’이란 뜻의 ‘내돈내산’이란 표현이 나오면 유튜브 영상이든 블로그 후기든 오히려 가장 먼저 의심해야 한다고 할 정도로 불신과 의심을 조장하는 행태는 넓게 퍼져 있다. 그러나 뒷광고 또는 바이럴 마케팅이 의심된다고 해서 해당 인플루언서에 제재를 가하는 것은 사실상 아직까지 이뤄지지 않고 있다. 표시광고법 제재 대상이 ‘사업자’나 ‘사업자단체’로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규제를 하기 위해서는 공정위의 지침 개정을 넘어 관련법이 개정돼야만 한다. 공정위는 “경우에 따라 사업자로 보고 제재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광고를 업으로 삼고 지속적으로 영리를 추구하지 않은 이상 인플루언서 개인을 사업자로 규정하기 쉽지 않다.

이에 따라 뒷광고 제재는 인플루언서에게 광고를 요청한 광고주를 중심으로 이뤄져 왔다. 인터넷 전체에 매일 게시되는 콘텐츠의 수가 방대한 점도 그렇지만 규정이 과거 인기를 끌었던 마케팅 통로인 블로그·카페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이유도 있다. 블로그·카페는 영상이나 소셜 네트워크를 활용한 콘텐츠 공유 플랫폼이 보편화되기 전까지 바이럴 마케팅의 주요 통로로 활용돼 왔다.

게다가 유튜브 등 영상 기반 콘텐츠는 물론 각종 해시태그를 사용한 인스타그램 등의 새로운 소셜미디어(SNS)에서도 광고 게시물이 늘면서 수익을 주목적으로 하지 않는 인플루언서나 일반 이용자들까지 간접적인 피해를 입게 된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뒷광고나 바이럴 마케팅이 그간 영향력을 높인 배경에는 개인 유튜버나 같은 커뮤니티 이용자에게 느끼는 친밀성이 보다 구체적인 상품 구매과정에서 더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기존의 대중매체처럼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대신 충성도가 높은 팔로어 및 구독자를 상대로 해 더 긴 시간 동안 자연스레 신뢰감이 형성되므로 광고와 홍보에 대한 거부감도 줄어든 것이다. 거꾸로 보면 뒷광고를 해온 일부 인플루언서 때문에 친밀감과 신뢰감을 바탕으로 영향력을 높여온 다른 인플루언서들 역시 신뢰도가 함께 꺾이는 연쇄효과에 시달릴 수 있다.

한국소비자원이 2019년 10~11월 실시한 ‘SNS 부당 광고 관련 실태조사’를 보면 국내 상위 인플루언서 계정 60개에 올라온 광고 게시글 582건 중 경제적 대가를 밝힌 게시글은 174건(29.9%)에 불과했다. 소비자원은 경제적 대가를 밝힌 174건조차 표시 내용이 명확하지 않거나 소비자가 쉽게 인지하기 어려운 경우가 상당수라고 지적했다.

■“광고주·플랫폼·유튜버 함께 처벌해야”

KB경영연구소의 ‘인플루언서 마케팅과 SNS커머스의 성장’ 보고서를 봐도 뒷광고에 유독 더 큰 배신감을 느끼는 이유를 유추할 수 있다. 보고서를 보면 상품 구매에 영향을 미치는 ‘반응률’은 1만명 이하의 팔로어가 있는 마이크로 인플루언서에게서 25~50%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100만명 이상의 팔로어가 있는 메가 인플루언서 반응률은 2~5% 수준으로 오히려 낮았다. 보고서를 쓴 서정주 선임연구위원은 “조사결과 마케터 중 86%가 인플루언서 마케팅을 활용했는데 이들 역시 주로 팔로어 수가 2만5000명에서 10만명까지 수준인 인플루언서를 활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여기에 특히 유튜브 등 영상공유 플랫폼에 등장하는 동영상 광고와 SNS상의 광고는 이용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광고유형이라는 점도 배신감을 극대화한 이유 중 하나다. 한국인터넷진흥원이 진행한 온라인광고 현황 조사자료를 보면 이용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광고유형 1위는 동영상 광고(27.6%), 2위 SNS 광고(13.5%), 3위 바이럴 광고(10.5%) 순으로 차례대로 상위권을 차지했다. 가장 접하고 싶지 않았던 광고를 광고인 줄도 모르고 속아서 지켜봐야 했던 셈이다.

뒷광고와 바이럴 마케팅이 만연해 있는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광고주는 물론 광고를 게시한 인플루언서까지 규제하는 대책을 넘어 콘텐츠를 유통하는 플랫폼까지 제재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미국에서도 인플루언서들이 뒷광고를 밝히지 않았다는 논란이 계속되면서 플랫폼도 처벌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미국 연방거래위원회의 로히트 초프라 상임위원은 성명에서 “인플루언서 마케팅으로 이익을 거두고 있는 소셜미디어 플랫폼과 광고주에게도 책임을 부과하는 법안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밝혔다.

뒷광고 등 온라인상의 다양한 광고 및 바이럴 마케팅에 대한 감독 권한이 있는 공정위는 오는 9월 시행되는 개정 지침을 통해 단속 범위를 확대하는 한편 인플루언서산업협회 등 업계와 협업해 시장의 자진 시정을 추진한다는 방침을 내놨다. 유튜버와 인플루언서들이 소속된 MCN(다중채널네트워크) 업체 대표들을 중심으로 뒷광고 근절 협약을 체결하는 등 자발적인 대처를 유도하는 등의 방안이 논의 중이다.

소비자들이 광고가 포함될 수 있는 콘텐츠들을 보다 면밀히 들여다보고 경각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김여라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플랫폼 사업자 등도 추천·보증 콘텐츠가 광고라는 것을 인식하고 이를 분명하게 표시함으로써 소비자의 오인을 방지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며 “인플루언서의 표시 광고와 허위과장 광고의 본질을 이해하는 소비자 리터러시 강화 방안도 모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Let's block ads! (Why?)




August 16, 2020 at 06:01AM
https://ift.tt/2Y4Qnoq

일상 곳곳에 침투하는 ‘뒷광고’의 유혹 - 경향신문

https://ift.tt/2Yts9ni


Bagikan Berita Ini

0 Response to "일상 곳곳에 침투하는 ‘뒷광고’의 유혹 - 경향신문"

Post a Comment

Powered by Blogg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