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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의 눈]기본소득, 멀지만 가야 할 길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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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모두가 긴급재난지원금이라는 이름으로 경험한 기본소득을 정기적으로 지급하자는 논의가 활발하다. 차기 대선의 최대 화두가 됐고, 토지세 등 구체적 재원 마련 방안까지 담긴 법안이 준비 중이다. 국민의 절반 가까이가 지지하고 있다. 한국판 기본소득제 정착을 위한 큰 걸음이 시작된 것이다.

김종훈 논설위원

김종훈 논설위원

기본소득은 멀지만 가야 할 길이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고소득자에게 빵값 10만원을 주는 것보다 소득 없는 사람을 지원하는 게 더 낫다”고 했다. 막대한 재원 등 복지체계 전반을 손봐야 하는 데다 노동의욕 저하 등을 우려한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은 “(현 복지체계로는) 배고픈데 돈이 없어서 빵을 못 먹으면 무슨 자유가 있겠느냐”고 말했다. 문제는 이런 사람들이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만약 소득의 대부분이 사회 공동의 자산에서 나오는 것이라면, 이를 공평하게 배분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미국의 사회심리학자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허버트 사이먼은 “모든 소득의 90%는 자연과 축적된 지식의 산물”이라고 했다. 공유부(commons) 개념이다. 소득은 개인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토지·물·공기·환경·광물 등 그 사회가 가지고 있는 자원과 현재에 이르기까지 축적된 지식의 영향을 더 받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소득의 일부분을 공동체 구성원 모두에게 공평하게 배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반대 주장도 존재한다. 하지만 ‘마크 저커버그가 미국이 아닌 최빈국에서 태어났다면 페이스북이 지금과 같은 거대 글로벌 플랫폼으로 성장했을까’를 생각하면 사이먼의 주장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런데 분배는 현실에서 다른 결과로 나타난다. 우리만 봐도 상위 1%의 소득이 하위 43% 전체 소득과 맞먹는다. 소득불평등에 따른 폐해는 크다. 가계 총소득이 증가해도 돈을 쓰는 사람 수가 적으니, 기대했던 소비는 일어나지 않는다. 경제성장을 방해하는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악의 자살률과 노인빈곤율, 출산율은 이런 빈부차와 무관치 않다. 학력 대물림도 마찬가지다. 김종인 위원장이 언급한 ‘빵’은 바로 이런 사회적 불평등을 말하는 것일 게다. 그런 나라에서는 아이를 맘 놓고 낳을, 공평한 조건에서 공부할, 건강하게 살아갈 자유는 제한적인 게 된다. 4차 산업혁명에 따른 일자리 빈곤이 현실화하면 이런 자유는 더욱 부정될 것이다. 코로나19와 같은 미증유의 감염병 사태 역시 일용·임시직, 청년 등 ‘사회적 약한 고리’부터 끊어냄을 확인했다.

지금 논의되고 있는 기본소득은 영국 출신 사상가 클리포드 휴 더글라스가 제창한 ‘국민배당제’에서 출발한다. 그는 화폐 발행 이익을 근거로 모든 국민에게 매달 5파운드를 지급할 것을 제안했다. 그런데 굳이 현금을 나눠주지 않아도 상관없다. 미국의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은 저서 <자본주의와 자유>에서 역소득세를 제안했다. 이 제도는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주장한 ‘안심소득제’와 유사하다. 오 전 시장은 “일정 소득(기본소득) 이상이면 세금을 내거나 덜 받아가고, 그 아래 계층은 세금은 안 내고 많이 받는 방식”이라고 했다. 그게 바로 역소득세다. 동전의 양면으로 효과는 기본소득과 거의 같다. 무엇을 어떻게 하든 국민 모두에게 최소한 기본소득만큼을 조건 없이 보장해주면 되는 것이다.

우려의 시선도 있다. 기본소득에만 의지해 일 자체를 안 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기우다. 적정 수준이라면 문제 될 것이 없고, 되레 노동의욕을 고취시킬 수도 있다. 지금의 복지체계에서 기초생활보장수급자는 일을 하면 소득이 발생해 수급자격을 잃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생계급여 대신 기본소득을 지급하면 일한 만큼 추가 소득이 생긴다. 상당수는 노동시장에 뛰어들 것이다. 재원에 대한 걱정도 민간연구소 ‘랩2050’의 분석을 보면 해결 가능한 일이다. 국민 1인당 매월 30만원을 지급한다고 했을 때 필요 재원은 187조원 정도다. 연구소 측은 소득세제 개편, 탈루·비과세 소득과세, 기본소득이 대체할 복지정책 재정 등을 통해 마련할 수 있다고 했다.

기본소득 논의는 갑자기 튀어나온 것도, 우리만의 고민도 아니다. 여러 나라에서 부분적으로 시행했거나 시행 중이고 그 효과도 어느 정도 검증됐다. 다만 이를 전 국민으로 확대해 시행하는 나라는 없다. 처음 가려는 길이기에 재원과 복지체계 전반에 대한 충분한 검토가 있어야 한다. 서두를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손을 놓아서는 안 된다. 평등한 경제, 평등한 나라를 만드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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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e 18, 2020 at 01:00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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