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법’ 외면…‘직무유기’ 국회만 모른다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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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17 06:00 입력 2020.09.17 06:01 수정

‘그쇳물 챌린지’ 대답 없는 정치권

“노동자 죽음, 언제까지 외면할 텐가” 심상정 정의당 대표가 16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 입구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며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심 대표는 반도체 노동자를 비롯한 수많은 노동자들이 백혈병, 암 등의 업무상 질병 재해에 노출되어 있다고 주장하며 반도체 노동자 복장을 하고 있다.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이낙연 대표 ‘법제정 공언’ 했지만
현실은 코로나·총선 공약에 뒷전

2010년 9월7일 충남 당진의 한 제철소 용광로에 29세 청년이 떨어져 숨졌다는 기사에 달렸던 댓글이 지난 14일 국회 로텐더홀에 울렸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통과를 촉구하며 1인 시위를 하던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노래를 불렀다. 산업재해로 숨진 노동자를 기리던 댓글이 시(詩)로, 그 시가 노래로 퍼져 국회까지 다다르는 데 10년이 걸렸다. 하지만 여야는 16일 현재까지도 이 노래에 답하지 않고 있다. 노동자가 ‘죽지 않고’ 일할 환경을 입법으로 책임져야 할 정치권이 법안 처리에 소극적이기 때문이다.

‘#그쇳물쓰지마라_함께_노래하기’ 챌린지가 시민들의 자발적 동참으로 이어지면서 정치권의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처리 여부에 관심이 모인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안전관리 소홀로 노동자가 죽거나 다치는 경우 경영책임자와 기업의 형사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이다. 지난달 26일 제정을 촉구하는 내용의 국민동의청원이 국회에 접수된 후 이날까지 약 9만명이 동의했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7일 “해마다 2000여명의 노동자가 산업현장에서 희생되는 불행을 막아야 한다”며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이 그 시작”이라고 했다.

정의당이 법안 논의를 주도하고 있다. 20대 국회에서 고 노회찬 의원이 발의했던 법안을 21대 국회에서 강은미 정의당 의원이 당 1호 법안으로 이어받았다. 기업 책임은 구체화됐고 처벌 강도는 높아졌다. 법원 판결의 보수성을 넘으려 별도 양형위원회를 두게 했고 민사상 입증책임을 사업주가 지게 했다. 정의당은 지난 7일부터 법 통과 촉구 1인 시위 중이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이날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숨진 황유미씨를 기리는 의미로 반도체 노동자 복장으로 1인 시위에 나섰다. 여당도 박주민 의원 주도로 중대재해 시 기업에 형사책임을 묻는 법안을 준비 중이다. 박 의원 측은 “20대에서 발의한 법안을 토대로 세부내용을 조율 중”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법안 처리 여부는 아직 불확실하다. 국민의힘 내부에선 ‘기업 경영 위축’을 이유로 반대하는 의원들이 많다. 민주당도 필요성에 공감하지만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우선순위에 올리는 데 소극적이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9월 정기국회에서는 코로나19 민생법안, 여야 총선 공통공약에 집중할 것”이라며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여야 합의가 필요한 사안”이라고 말했다. 이낙연 대표도 중소기업 관계자들을 만나 “법 제정 과정에서 산업현장의 의견을 듣는 과정을 갖겠다”고 속도조절 의사를 내비쳤다. 강 의원이 지난 6월 낸 법안은 제대로 논의되지 못했다.

여론은 10년에 걸쳐 노동자의 생명권을 호소하고 있지만, 정치는 소극적으로 일관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부동산 관련법을 강행하던 때와 달라진 여당 태도를 두고 ‘선택적 합의’라는 말도 나온다. 여야의 ‘직무유기’가 길어지는 동안 김용균씨가 사망한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또다시 안전규정 위반으로 한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은 기자와 통화하면서 “더 이상 일하는 사람이 일터에서 목숨을 잃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당연한 요구를 왜 정치권은 외면하는가”라며 “먼저 나서서 해결하지 못한다면, 시민들이 요구하는 것이라도 제대로 해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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