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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수 칼럼]이제 ‘전태일’이 남았다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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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06 03:00 입력 2020.10.06 08:1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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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전 오늘이다. 1970년 10월6일, 노동청장에게 ‘평화시장 근로개선 진정서’가 도착했다. 설문지 126장이 첨부됐다. 그 속엔 먼지 날리는 2평 작업장에 15명씩 몰아넣고, 폐결핵·신경통·위장병을 달고 살며, 각혈하는 16세 소녀에게 피로해소제 주사를 놔 밤새 특근시키는 무법천지가 담겼다. 다음날 경향신문 사회면 머리기사로 ‘골방서 하루 16시간 노동’이 나왔다. 10대 노동자 3만명이 혹사당하는 청계천 일대 피복공장 실상이 처음 알려진 날이다. 발칵 뒤집혔다. 하나 그뿐이었다. 정부는 국정감사 중에만 몸을 낮췄고, 한 달 내 문제 해결을 약속한 업주들은 11월7일까지 답이 없었다. 엿새 뒤 평화시장에서 22세 재단사 전태일이 몸에 불을 댕겼다. 가슴에 근로기준법 책을 품고 있었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 살아 있으면 72세가 됐을 전태일 앞에 사람들은 두 말을 붙인다. 청년과 불꽃. 100년 전 18세로 생을 마친 유관순을 지금도 누나라 부르고, 태극기를 떠올리듯이.

이기수 논설위원

이기수 논설위원

50년의 무게이리라. 2020년 10월6일, 세상은 ‘전태일’로 웅성거린다. 추석 전 국회에 회부된 근로기준법(11조)·노동조합법(2조) 개정안과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안에는 ‘전태일 3법’이란 이름이 붙었다. 모두 꽤 높은 청원의 벽(30일 내 10만명)을 앞당겨 넘었다. 5인 이상이 아닌 모든 사업장에 근로기준법을 적용하고, 특수고용·간접고용 노동자도 노조 할 권리를 갖고, 중대 사고 시 사업주와 원청에 책임을 묻자는 법이다. 왜 지금도 전태일인가. 짜장면값이 100원일 때였다. 그 평화시장에서 일당 50원을 받던 견습공은 지금의 알바다. 미싱사·재단사도 연장근로·휴일 수당을 모르던 그때와, 근로기준법이 업주의 선의에 맡겨진 지금의 소사업장·특고 노동자는 다를 게 없다. 오늘도 해고됐다고 노동위원회에 가면 먼저 5인 이상 사업장인지 묻는다. 근로감독관이 쳐다보지도 않던 그 평화시장과 매일반이다.

전태일이 만든 노동조직은 ‘바보회’였다. 인간답게 대접받을 권리는 모르고 기계처럼 산 바보였다고. 그가 죽고 숱한 노조가 출범했지만, 여전히 노동3권 없는 노동자가 1000만명이 넘는다. 50년 전 평화시장에선 국립공원에서 죽은 크낙새가 톱기사인 걸 부러워하며 “조권(鳥權) 밑에 인권”이라고 했다. 지금도 하루에 7명이 산재로 죽고, 1명이 과로사로 죽는다. 구의역과 화력발전소에서 그랬듯이 대개는 혼자 일하다 넘어진 데서 또 넘어졌다. 법 밖의, 노동자이지도 못한, 위험한 ‘전태일들’은 달라진 게 없는 세상이다.

아이러니하다. 근로기준법과 노동조합법은 1953년 한국전쟁 중에 만들어졌다. 17년 뒤 평화시장에서 “그런 법이 있었냐”며 화형시킨 걸 보면 더욱 그렇다. 전쟁 통에 북한이 ‘노동자 천국’ 말공세를 펴자 우리도 급조했다는 학자들의 분석이 그럴 법하다. 고칠 게 많다는 뜻일 게다. 사람들의 삶을 바꾸는 게 큰 개혁이다. 코로나19 사태 후 ‘K’자로 더 벌어지는 양극화의 제동장치도 노동에 있다. 오래전부터 선진국에만 있는 게 있다. 노동법 교육이다. 노동자가 될 대다수가 필요하고, 사용자도 갑질을 하지 않게 초·중·고에서 노동법을 배워야 한다. ILO에서 29년째 ‘후진국’ 소리를 듣는 노동, 국회가 새 틀을 짜고 새 출발은 교육이 시켜야 한다.

25년 전 영화에서 배곯는 여공들에게 버스요금으로 풀빵을 사주던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은 11월 애니메이션 <태일이>로 극장에 걸린다. 구두닦이부터 문학청년, 어머니 이소선에 부리는 어리광과 분신까지 전태일의 열 토막을 열 사람이 연기하고 <네 이름은 무엇이냐>고 묻는 연극이 전국을 돌고 있다. 응모가 시작된 50주기 행사는 14일부터 청계천과 온라인 공간에서 한 달간 이어진다. 동판을 찍고, 영상·만화·합창을 겨루고, 국제포럼이 열린다. ‘전태일’을 소환하고 곱씹는 사람들이 예외없이 말한다. 그래도 이 가을의 끝은 ‘국회의 시간’이라고.

유난히 꺾임이 많은 해다. 4·19(60주년)와 5·18(40주년), 6·15(20주년)와 6·25(70주년)가 지났다. 어떤 나라로 갈지 자문해볼 11·13의 전태일(50주년)이 남았다. 그런 생각을 하며, 나훈아 콘서트를 보며 추석연휴 <전태일평전> 네번째 개정판을 읽었다. 35년 전 초판 볼 때 솟구친 눈물이 여러 곳에서 또 맺혔다. 전태일이 죽기 전 벗들에게 남겼다는 스물여섯 줄 유서는 송곳처럼 또 찔렀다. “나를 모르는 모든 나여. 부탁이 있네. 지금 이 순간의 나를 영원히 잊지 말아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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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tober 06, 2020 at 01:00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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